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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

성폭력의 개념 - 성폭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에 대한 정의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입니다.
이전에는 ‘정조에 관한 죄’로 강간이라는 개념이 여성 정조를 침해한 범죄로 인식되었죠.
정조의 침해는 여성 개인에게 가해진 범죄가 아니라, 여성이 속한 남성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범죄라는 의미입니다.
성폭력을 사회 문제화한 여성 운동 단체에서는 성폭력을 성별 권력관계의 문제이고, 근절해야 할 폭력으로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성폭력은 여자로서 부끄러운 일, 여자들의 팔자, 정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 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로 이슈화된 것입니다.
성폭력을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 안에 강제로 삽입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남성 성기 중심적, 남성 행위 중심적인 정의입니다.
때문에 여성 운동 단체에서는 성폭력을 여성이 불쾌함을 느끼는
모든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으로 정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존의 성폭력 개념은 여성들이 일상에서 다양하게 경험하는 성적 불쾌함들을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폭력의 개념을 넓힌 여성 운동의 성과로 여성들은 자신의 다양한
경험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여성의 성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또한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폭력의 개념
을 확장하면서 우리는 기존의 여성다움, 남성다움에 대한 규범을
그대로 수용하고 오히려 강화하게 되었다는 새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성별에 따라 다른 성적 규범이 요구되는 사회에서 성에 관한 담론은 여성의 몸을 성애화되고 수동적인 대상으로> 볼 뿐, 성과 관련한 여성들의 욕망과 의지를 쉽게 삭제합니다. 이러한 통념은 여성들의 성과 관련된 불쾌함들이 성폭력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는 여성단체의 주장과 같다는 오해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여성들의 경험으로 성폭력을 정의하고자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시도가 여성들의 모든 성적인 경험을 폭력으로 해석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든 것입니다. 여성들의 경험을 폭력으로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폭력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는 여성들의 힘을 성폭력의 정의 안에 포괄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현재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을 새롭게 정의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개념은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과 관련해서 해석하고 다양한 실천을 하는 것이 여성 개인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과정이 되도록 하는 본 상담소의 운동 지향과 만나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 개념은 위험한 것, 침입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폭력이라는 기존의 언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늘 사회적 통념과의 투쟁 과정에 있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성폭력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여성 개인들의 다양한 경험들로 다시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