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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35년을 한결같이 반성폭력운동: 호주 NSW 강간위기센터


 ♣ 지난 번에 이어 호주에서 유학 중이신 이미경 이사님께서 호주의 NSW 강간위기센터(NSW Rape Crisis Centre)를 방문하신 후기를 나누어주셨습니다. 1974년에 개소해 35년 간 반성폭력운동 활동을 해 온 NSW 강간위기센터를 만나볼까요? 


 
35년을 한결같이 반성폭력운동

호주 NSW 강간위기센터

(NSW Rape Crisis Centre)

 

   이제 한겨울로 접어든 이곳 시드니의 7월 첫날,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NSW 강간위기센터를 방문했어요. 시드니 타운홀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빅토리아 로드를 따라 15분 정도 달려 Drummoyne지역에 도착. 센타에서 알려준 주소지는 밖에서 보면 다른 가정집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주택이었고 간판도 없었어요. 이곳에서도 역시 성폭력상담소란 이름을 밖으로 내걸기는 쉽지 않은 문제임을 짐작할 수 있었지요.


 ▲ 시드니의 한 주택가에 위치한 NSW 강간위기센터

  환한 웃음으로 저를 반겨준 건장한 체구의 Karen 소장은 생머리를 한갈래로 묶은 수수한 차림의 매우 친근한 인상이었어요. 얼마전 호주 스포츠계를 발칵 뒤짚어놓았던 럭비선수들의 2003년 뉴질랜드에서의 집단성폭력 사건에 대한 언론인터뷰에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던 때와는 또 다른 부드러운 모습이었지요. 카렌은 근래에 한국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가끔 센터를 찾아온다면서, 한번은 통역을 맡은 20대 남성이이‘성폭력’이란 말이 어색한지 얼굴이 빨개지면서 통역을 한 에피소드를 소개해 함께 웃었어요.


▲ 이 분야 30년 활동 경험의 Karen Willis 소장

  NSW 강간위기센터는 1974년에 개소해 그동안 시드니 강간위기센터(Sydney Rape Crisis Centre)로 활동해오다가 1990년대 말경, 정부에서 시드니만이 아니라 NSW전체를 대상으로 한 활동을 요청하고 추가지원을 하게되면서 명칭을 NSW 강간위기센터로 바꾸어 활동하고 있다고 해요. 주요활동인 상담은 24시간 365일 동안 진행되며, 전화상담과 온라인 실시간 채팅상담, 이메일상담을 하고 있답니다. 면접상담은 예산부족 등으로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요. 2008년 한해 동안 총 6,210회 상담을 하였고, 이 중 신규상담은 1,331건, 사건발생 7일 이내 상담이 300여 건이 되드라구요.


▲ 가해자에 대한 ‘관용은 없다’ 포스터와 사무실 전경

  카렌은 성폭력상담은 그야말로 전문가들이 맡아야 하며, 이를 위해 심리학이나 사회복지, 또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상담경력을 가진사람들이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어요. 얼마전에 2007년에 우리나라 여성부, 법무부, 경찰청, 청소년위원회 공무원들이 이 센터를 방문한 후 작성한 보고서를 보니, 이와 같은 NSW 성폭력위기센터 상담원의 자격에 비해 한국의 경우 64시간 교육만으로 상담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였드라구요. 이처럼 활동가들의 ‘전문성’을 ‘학위’로 이야기하는 추세에 대한 우리나라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의 대안이 시급하게 논의되고 보완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목할 것은 이 센터의 상담통계시스템이었는데요. 2004년에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7,000여만 원 예산을 들여 프로그램을 개발, 1년여동안 시험운행한 후, 2005년부터 지금까지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침 전산 담당자인 Donna로부터 이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상담원들은 종이일지가 아닌 컴퓨터에 모든 상담을 입력하고 있었어요. 상담건수와 피해유형 및 지원방법 등 제가 요청하는 모든 통계들을 즉석에서 받아볼 수 있었어요. 정부 보고는 이 시스템 안에서 충분히 소화한다고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서 추진중인 새올행정시스템의 중앙집적식 통계방식의 문제점을 생각하면 너무 부러운 통계시스템이지요. 더구나 이 센터에서는 모든 내담자들로부터 상담동의서를 받아서 스캔하여 개인별 상담일지 파일에 함께 저장하고 있었는데, 내담자 권리보장 차원에서도 이러한 철저한 태도는 우리가 꼭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되었어요.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프로그램을 이곳 NSW 강간위기센터에서만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좀 아쉬웠어요.


▲ 상담일지 전산입력시스템을 설명하는 활동가 Donna Theadoridis

  국내·외 연대활동에 대해 질문하니, 현재 전국 130여 센터들의 모임(National Association of Services Against Sexual Violence, NASASV)의 사무국 역할을 이 센터에서 맡고 있다고 합니다. 이 연합체는 우리나라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와 같은 조직인데  1년에 한두 번만 전체 회의를 하고, 주로 on-line 상에서 소통하고 있다고 하네요. NASASV는 무엇보다 성폭력예방활동에 주력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국제연대는 예산문제로 활발히 진행하지는 못하는데 얼마전 스코틀랜드 성폭력상담소와 교류하는 활동을 했다고 하네요. 또한 Western Sydney 대학과 공동연구 프로젝트로 청소년 성교육연구를 몇 년째 진행해오고 있다고 해요.



▲ NWS 강간위기센터 벽에 붙어있는 사진들과 밤길되찾기 행사 포스터


   NSW 성폭력위기센터의 조직규모는 총 풀타임 스탭 11명 규모인데, 2명만 전일제 활동가이고, 나머지 9명 티오는 파트타임제 운영되고 있어 총 20여명이 활동하고 있답니다. 작년 전체예산은 약 10억이고 이중 정부지원이 90%이며, 7월부터 시작되는 올 회계년도부터는 면접상담 지원 등이 추가되어 15억 규모가 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2003년부터 전국럭비연맹(National Rugby league)에서 연간 천 만원씩 선수와 지도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답니다. 이외에도 캔터베리, 노스시드니 커뮤니티센터에서도 연간 1천 만원씩 교육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었어요. 이러한 예산규모만 보아도 이 센터가 상담의 비중만큼 성폭력예방을 위한 교육활동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지요. 


▲ NSW 강간위기센터 활동가들과 함께


  카렌은 이 센터에도 회원은 있지만, 회비로 예산을 충당한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현정부와 별 무리없이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어요. NGO로서 정부정책 모니터링 및 비판활동을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은 먼저 정부와 대화를 시도하고, 그래도 시정이 안되면 그 다음 단계로 외부 언론 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해요. 그리고 카렌 소장은 6개의 주요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일에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Health Center와 캠블타운 커뮤니티센터 매니저 등으로 20년 간 활동해오다가, 2002년부터 이 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는 이 분야 30여 년 활동경력의 카렌에게 언제가 가장 보람있느냐고 질문을 했어요. 그녀는 운동의 성과로 한 단계 한 단계 사회가 변화해가는 것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고, 소진(burn-out)되었을 때는 시골집에 가서 정원을 가꾸며 나무들과 대화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요. 지난 35년 동안 여러 굴곡을 거치면서도 한결같이 반성폭력운동을 해오고 있는 언니 단체인 NSW강간위기센터, 그리고 든든한 운동의 선배 카렌은 오랜 역사만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지혜의 깊이와 저력이 느껴졌어요.   

  (작성 :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