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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나눔터] 생존자의 목소리

나눔터 87호 <생존자의 목소리①> True Survivor - WR

<생존자의 목소리>는 연 2회(1월, 7월) 발간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회원소식지 [나눔터]를 통해서 생존자로서의 경험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마련된 코너입니다. 

투고를 원하시는 분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담당 성문화운동팀 메일 (f.culture@sisters.or.kr)로 보내주세요. ☞[자세 안내 보기]

책자 형태인 [나눔터]를 직접 받아보고 싶은 분은 [회원가입]을 클릭해주세요.

 

영화 ‘로켓맨’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3번 이상 보았다. 이 영화는 엘튼 존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약물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병원에 입원해 재활치료를 받게 된다.

 

치료를 받으러 온 엘튼에게 상담사는 묻는다.

"Why are you here?(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한다.

"I want to get better(더 나아지고 싶어서요)."

 

그 대답에 상담자는 한 가지 더 질문한다.

"How was your childhood?(당신의 유년 시절은 어땠나요?)"

 

이 질문에서 잠시 멈추고 나에게 질문해 보았다.

"How was my childhood? (내 유년 시절은 어땠지?)"

 

나의어린 시절..

이이야기를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 나이 일곱 살 때 친오빠는 내게 사랑놀이를 하자고 했다. 나보다 네 살 위 인 오빠는 사랑놀이라는 명목 하에 내 몸을 허락 없이 만져댔다. 어렸지만 뭔가 이상했고 싫었던 모양이다. 여러 번 고민 끝에 엄마에게 말하기로 결심하고 용기내어말했다.

 

"엄마, 오빠가 자꾸 사랑놀이 하재!"

"사랑놀이?"

 

불행히도 엄마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고개를 갸우뚱거리 며 방에서 나가버렸다. 방에 홀로 남겨진 나는 그때 엄마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과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엄마도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아빠와 엄마는 저녁 9시가 되어야 퇴근해 집으로 왔고, 학교 다녀오면 오빠랑 단둘이 집에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중학생인 된 오빠는 날로 난폭해져 갔고, 나를 신체적으로, 성적으로, 언어적으로 학대하기 시작했다. 오빠의 폭력과 성폭력이 날로 거세어지자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나에겐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해지는 동네 골목에서 엄마의 저녁 먹으러 오라는 부름 소리에 같이 놀던 아이들은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 쪽으로 걸어갔지만 아파트 3층에 살았던 나는 도저히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3층과 4층 사이 까치발로 서서 유리창으로 주차장을 바라보며 엄마 아빠가 빨리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바로 그 순간, 문이 찰칵 열리는 소리가 나며 뒤돌아보니 괴물 같은 사람이 헛웃음을 지며 나에게 오라고 손짓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에서는 도망가라고 소리치지만 그 괴물을 보는 순간 내 몸은 마음과 달리 얼어붙어버렸고 그가 조종하는 대로 난 계단을 내려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 괴물은 내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고 자기 방에 데려가 때리기 시작했고, 늘 하던 대로 때린 다음 옷을 벗겨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강간을 한 다음 멍든 부위에 물파스를 발라주며어 김없이 똑같은 말을 했다.

 

"말하면 죽어"

 

나는 그 말을 믿었다. 어렸을 때부터 덩치가 컸던 그 괴물은 나를 죽일 수 있 는 사람일 정도로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온 엄마와 아빠는 내가 침대에서 등을 돌리고 울고 있는 것조차 모르고 자는 줄로 생각해 불을 끄고 문을 닫고 나갔다. 저녁도 굶은 채로 무수히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생리 전까지 친오빠의 지속적인 폭행과 강간은 계속 이어졌고, 부모님의 잦은 다툼, 폭력도 어린 내가 감당하기에 버겁고 힘들었다. 말하면 죽인다고 협박했기 때문에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죽이고 싶고 미움과 증오가 가득 차 미 칠 것 같을 때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글쓰기였다. 일기를 자주 썼다.

 

고등학교 때 콘서트가 끝나고 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엄마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엄마는 조용히 내 방으로 데려가 말했다.

 

"네 일기를 봤어.."

 

드디어 봤구나.. 이제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내 삶이 뭔가 달라질 수 있을 까 잠깐 기대하던 찰나에, 엄마가 또 입을 열었다.

 

"아무한테 말하면 안 돼.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해."

 

오빠가 했던 똑같은 말이네. 왜? 난 피해자인데.. 왜 계속 숨겨야 하는 걸 까? 엄마가 알았다는 것은 좌절감만 초래했을 뿐이다. 오빠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범죄는 고요함으로 덮어졌으니 말이다. 난 그렇게 또 한 번 크게 엄마에게 실망을 했다. 마음이 닫힌 채로 그 끔찍한 일들을 당한 어린아이를 가슴 속에 묻어두고 가둬두고 방치하며 세월은 흘렀고, 성인이 된 나는 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 괴물을 떠나 산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편안함을 제공했지만 시시때때로 뉴스에서 ‘성폭행’ 혹은 ‘강간’이란 단어를 보면 난 무기력해지며 트라우마로 며칠씩 누워있기도 하고 자주 찾아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이 나를 엄습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고, 결혼하고 나서 내 안에 어마어마한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것 때문에 남편과 아이들을 괴롭게 했다.

 

어느 날, 내 안의 분노로 남편과 크게 싸운 후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왔더니, 술도 잘 마시지 못하는 남편이 괴로운 나머지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있었다. 그때 난 결심했다. 남편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나의 이야기를 모르면 끝내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 가정을 살리기 위해서는 내가 용기를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다음날 술이 깬 남편에게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고, 듣고 너무 많이 놀라지는 말아달라고, 왜냐하면 내가 얘기한 것을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부탁했다.

 

남편에게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모두 해주었고, 나는 도움이 절실히 필 요하다고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어떠한 판단의 소리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믿어주고 수용해 주었으며 같이 울어주고 안아주었다.

 

그것은 실로 나에게 크나큰 좋은 경험이 되었다. 나에겐 늘 큰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의 이야기를 알면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사실을 안 남편은 나를 깊이 이해해주고 아파 해주며 내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도와주었다.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남편에게 나의 아픔과 상처를 고백한 일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말하면 죽어" 세뇌 되어있던 나는 남편에게 얘기한 후 친오빠가 우리 집을 찾아와서 칼을 내 등에 꽂을 것 같고 우리 집에 불을 지를 것 같은 말도 되지 않는 공포심을 느꼈는데, 남편은 나에게 그런 일도 없겠지만 만약 찾아온다고 해도 자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나를 지켜줄 거라며 안심을 시켰는데 그때 나는 처음으로 혼자가 아니고 내편이 생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렇게 상담도 받기 시작했고, 공부도 하며 나날이 건강해지는 내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고 이제야 일상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내 문제에 사로 잡혀 있고 내 문제가 너무 커 여유가 없을 때는 아이들의 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너무 버겁게만 느껴졌다면 이제는 종알종알대는 아이들의 말도 들리고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힘들지 않고 즐거워지고 있다. 예전에는 아픈 기억이 올라올 때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면 지금은 아프고 괴로워 잠깐 누워있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예전처럼 길지 않고 짧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난 이렇게 친족 성폭력 생존자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전진하며 나아가고 있다. 영화 ‘로켓맨’을 보면 거의 마지막 부분에 성인인 엘튼이 어린 아이인 엘튼을 만나 안아주는 장면이 있다. 성인이 된 나도 어린아이인 나를 만나 안아주었다.

 

친오빠가 무서워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추운 겨울 저녁도 굶은 채로 벌벌 떨 며 아파트 3층과 4층 사이에 까치발을 들고 서서 밖을 바라보며 애타게 엄마, 아빠를 기다렸던 열두 살의 여자아이가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본 적이 많았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꼭 안아주며 말했다. 정말 미안했다고. 너를 오랜 세월 모른 척하고 방치하고 너를 부끄러워하고 싫어하기까지 한 나를 용서해 달라고 말이다. 그 아이는 부끄러운 아이가 아니고 보호 받아야 할 아이였다는 것을. 그렇게 우린 화해했다. 그리고 우리 둘은 이제 함께 환하게 웃는다. 열두 살의 나도 엄마가 된 나도 True Survivor(진정한 생존자)로 말이다.

 

이젠 웃는거야! 스마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