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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

[후기] 15기 씨티-경희 NGO 인턴십 _ 수이

안녕하세요, 인턴 수이입니다. 눈이 유독 많이 내렸던 1-2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눈이 오는 날이면, 상담소에서 먼 곳에 거주하는 동료인턴 ‘뿌리’의 출퇴근길이 걱정되곤 했습니다. 이제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인턴업무가 막을 내렸다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상담소에서의 6주 동안, 저는 다채로운 감정을 소화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감정까지 바래지기 전,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깨우쳐 왔는지를 남기고 싶어 본 후기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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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동기


한국성폭력상담소. 사실 씨티-경희대 NGO 인턴십 15기를 통해 배정받기 전까지 상담소는 개인적인 인연이 전무한 곳이었습니다. 인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했던 동기는 한 문장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 작년 록밴드 U2의 내한공연 당시 띄워진 메시지입니다.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어떤 사람은 당연히 주어졌던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을 싸워 얻습니다.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만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연대를 제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으며 인생을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민낯을 직시해야 합니다. 학회 세미나를 비롯한 대학에서의 배움을 통해 제 사고의 지평선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 일어난 불행에 대해 연민의 감정은 느낄지언정 그 이상 나아가진 못하는 부끄러운 제 자신 또한 마주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그리고 ‘행동의 무능’. 제가 저의 민낯을 되새김질하는 것을 넘어 행동하는 지성인이 되는 것에 있어서 시민사회에서의 활동은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믿기 때문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인연과는 무관히도, 상담소로 배정받은 소식을 들은 저의 첫 반응은 ‘기쁨’이었습니다. 대학교 진학은 비단 물리적 공간의 확장만이 아닌, 정신적 영역까지 포함한 저의 작은세계가 넓어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대학에 진학하며 '페미니즘'에 많이 노출될 수 있었고, 동기들을 비롯한 대학의 주변사람들과 세미나를 진행하며 세상을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학과의 사회과학학회 학회장을 역임하면서 '비가시적 권력'의 작동원리와 공고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웠고, 모의국회 학술부장으로서 사회문제가 어떻게 제도권에 반영될 수 있을지 정치권의 메커니즘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2020년 상반기에 <스포츠 성폭력 : 남성 지도자와 여성 운동선수 간 지배 관계 분석>, <법적 판단 기준으로서의 ‘성적 수치심’> 등의 사례분석 페이퍼를 작성했습니다. 프랭크 러벳과 마사 너스바움의 이론과 개념을 기반으로 해당 사안에 대해 분석했고, 최종 결과물에 대해 학과 교수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분석을 토대로 도출한 정책적 대안이 당위적인 주장에 그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저의 문제의식을 더 날카롭게 제련하고 싶었고, 실무적인 영역까지 포함한 대안의 실현를 구체화하길 원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생존자에 대한 직접지원을 비롯하여 바람직한 성문화 조성을 위한 운동에 힘쓰는 NGO입니다. 사건지원 절차 및 제도, 반성폭력을 위해 필요한 제도 등 성폭력 문제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문제의식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실제 인간의 고통 대부분이 ‘공감부족’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사자성이 없어 사회 내 차별을 직관할 수 없다면 모방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방은 해당 주제의 독서활동으로 작게 시작할 수 있지만, 사회운동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더욱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마주하게 될 다양한 사건들과 활동가님들과의 대화는 제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회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 이민경,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CONTENTS

상담소에서의 활동은 크게 7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위 사진을 참조해주세요.

 

ORIENTATION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사무국, 여성주의상담팀, 성문화운동팀 이상 총 세 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설기관으로 성폭력피해자쉼터 '열림터'와 연구소 '울림'이 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씨티경희 NGO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파견된 인턴에게 각 부서별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해주셨고, 한 오티당 1시간-1시간30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며칠에 나눠 진행된 오리엔테이션은 각 부서 자원활동가님이 한 분씩 맡으셨고, 구체적 활동내용에 대해 안내해주셨을 뿐 아니라 현재 상담소에서 주목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문제점과 개선방향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인턴들이 담당하게 될 직접적인 업무와 관련성이 낮더라도, 해당 부서가 담당하거나 주목하고 있는 지점들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셨던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를 구체적으로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여성주의상담팀 OT를 통해, '무료법률구조'와 '국선변호사제도'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무료법률구조가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지원받기 어렵다는 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OT를 통해 지금껏 알지 못했던 현행 제도의 존재여부나 법의 사각지대에 대해 알게 된 기회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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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나서는 질의응답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배려를 해주셨습니다. 이 시간을 이용해 그동안 궁금했던 지점, 특히 피해지원과 관련한 여러 제도를 비교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해볼 수 있었습니다. 차이점에 주목하여 현행제도를 비교하니, 개선해나가야 할 지점에 대해 구체적인 초점을 둘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더 나은 피해자 지원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온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제30차 정기총회 및 이취임식 준비

 


두 번째 업무는 총회자료집 제작, 퇴임식 영상편집, 총회 장비설치 및 촬영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두꺼운 총회자료집에서 제가 맡은 부분은 극히 일부여서 업무를 수행했다고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상담소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와 인터뷰 내용을 취합하고 정리하였습니다. 부가적으로, 정기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비워진 상담소 홀에서 전화응대업무를 맡았습니다.

 

 

전화응대 및 우편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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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업무를 출퇴근하며 수행했었던 저는 상담소에서 정규업무 외 일상적인 업무가 상황에 따라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진행되는 상근자원활동가 전체회의시간에 비워지는 홀에서 문의전화를 응대하거나, 후원 또는 정회원들에게 정기적으로 보내는 우편물을 제작하고 발송했습니다.

 

 

기자회견 외근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오전 11시, 국가인권위원회 앞,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정의로운 권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해당 사건의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자원활동가님들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하였고, 공대위 입장문 발표를 청취했습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여성노동자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이상 여섯 단체가 참석한 가운데, 발언문 낭독과 피해자 발언대독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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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많은 인원이 참석하지 못했던 시위였고, 이로 인해 기자회견과 1인시위의 형식으로 간소히 진행되었습니다. 적은 인원과 거리두기로 인해 비교적 잔잔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분 한 분의 발언이 힘 있게 터져나오고, 그것에 화답하듯 함께 정의로운 권고를 촉구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더할 나위 없는 역동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외근업무를 통해, 피해자가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선제해결되어야 할 사회구조적 병폐는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2차 피해 이 모든 것이 반복되는 노동사회에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님의 발언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이후 수요시위 연대발언문을 작성할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돌아가야 했던 ‘전쟁 없는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성평등한 일상회복을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세워진 팻말 중 한 문구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질문에 대해 “성폭력 사건이 있기 전과 동일하게 피해자를 대할 것”이라 답변한 변호사 이명숙(조두순, 도가니, 이윤택 성폭력 사건 등 지원한 성폭력 피해자 변호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님의 문장이 말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게 실천되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현실화되려면 우리 사회의 변화가 필요하고, 그 단초가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상담소 지원사건 자료 정리 (백서 작업)

 

 

지리산님과 함께 상담소가 지원했던 사건의 대응활동 자료를 정리하고 백서로 전환하는 업무를 맡았습니다. 주요 지원 사건과 주요 판결문 (군성폭력, 결혼이주여성 혼인무효소송) 등 재판자료, 증거자료, 관련 토론회 및 기자회견, 공동위 회의자료 등을 목록화하고 넘버링하여, 백서로 인쇄하였습니다.
생각보다 방대한 자료의 양과 뒤죽박죽 섞여 있는 순서에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목차를 만드는 작업은 더욱 추상적이기만 했습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었기에,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을지 자신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업무를 담당하게 된 인턴 뿌리와 함께 서로가 맡은 부분을 의논했고, 이후 중간점검으로 지리산님과 함께 검토하면서 목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2주정도에 걸쳐 완성한 작업물을 백서로 인쇄하고, 그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하니 뿌듯한 마음이 컸습니다. 이 지난한 작업을 마친 덕분에 활동가들이 손쉽게 자료를 확인하고 더 나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란 지리산님의 말씀이 감사했습니다. 특히 변호인이 작성한 글을 읽으며 피해자를 지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사건의 어떤 측면에 집중하는지, 실무적인 측면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백서화 작업을 통해 자세하게 알게 된 성폭력 사건의 내막에 생각했던 것보다 감정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이 분노가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도록 이어나가는 것을 또 다른 나의 과제로 여기며, 더 분노하되 지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제1478차 수요시위 기자회견 기획 및 연대발언

수요시위 기자회견 관련 업무는 크게 주제 선정 및 세부기획, 포스터 제작, 연대발언문 작성 및 현장참여로 구성됩니다. 몇 차례에 걸친 기획회의를 통해,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수요시위에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를 세심하게 확인했고, 관련 영상 및 자료를 함께 확인하며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성찰적으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476차 정기 수요시위 기자회견 유튜브 생중계를 함께 시청하고, 피켓 등 현장 물품 제작 및 홍보활동 기재하는 등 수요시위 기자회견 진행에 앞서 수행해야 할 업무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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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제작업무는 제가 중점적으로 맡게 되었습니다. 기획회의를 통해 확정한 문구와 고 김학순 여성인권운동가의 공개 증언을 포스터에 담았습니다. 문구와 함께 김학순 운동가의 증언을 기재한 것은 해당 증언이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올해 30주년을 맞이하는 첫 증언을 "우리가 답한다"의 내용으로 배치하였습니다. 한편, 포스터 중간의 노란색 나비는 평화나비를 상징하며, 형상화하고 있는 줄은 단순 ‘실선’이 아닌 ‘글자선’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는 지난한 수요시위의 역사, 평화, 정의 등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요시위 기획 논의에서 신아 활동가님이 말씀하셨던 ‘목소리의 목격자’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청각을 자극하는 ‘목소리’를 시각으로 ‘목격’한 표현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목격자는 함께 이야기하지 않으면 그저 방관자에 불과합니다. 함께 발화할 때 비로소 그 이야기의 ‘배우’가 된다는 강조하며, 연대의 가치와 연결짓고 싶었습니다.
1478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코로나로 인해 현장참여가 불가능했고, 기자회견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은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송출되었고, 저장된 스트리밍 영상으로 기자회견 현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요시위 기자회견에서 저는 미리 작성해온 연대발언문을 낭독하였고, 시간의 틈새마다 기자회견 현장을 촬영하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상담소의 주요업무 중 하나였던 수요시위 기자회견을 기획하면서, 해당 사안을 정의롭게 풀어나가는 일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에 대해 재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특수상황에서 일어났던 문제로 축소해서 볼 것이 아니라, 시간적 괴리감을 뛰어넘어 이 문제의식이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문제를 둘러싼 성폭력 통념 및 피해자상은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군 성노예제로 동원되었던 여러 나라의 여성들에게 큰 고통을 야기했고, 이는 현재진행중인 문제입니다. ‘피해자화’의 정치는 피해자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주목하기보다, 보호받을 가치와 그렇지 못할 가치의 이분법을 고착화시키며 제도적, 인식적 병폐로 이어지는 단초입니다. 이러한 피해자성에 균열을 내는데 중요한 역사적, 사회적 의미가 존재하는 ‘수요시위’에 기획자로서 함께 참여하여 영광이었습니다. 작성한 연대발언문은 부족함이 많았지만, 신아님의 코멘트 덕분에 용어 하나하나의 선택을 신중히 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활동보고회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활동보고회를 자체적으로 진행합니다. 대략 6주간의 인턴활동기간 동안 수행한 업무 내용을 비롯하여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활동소감 등을 모든 상근활동가님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이후 한 분씩 돌아가며 서로의 지난한 시간들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만남을 기약하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활동보고회가 마친 뒤, 활동가님들이 건네주신 말씀들이 아직 기억에 납니다. 특히 “지금까지 온 인턴들 중 수이와 뿌리가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라고 하시던 활동가님의 말씀이 감사했습니다. 저희에겐 상담소가 처음이겠지만, 매년 인턴을 마주하는 상담소의 입장에서는 ‘N번째 인턴’으로 스쳐지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머무름이었지만, 앞으로를 생각할 수 있는 인연으로 남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

 

끝으로,
직접 마주본 피해현실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답답하고 가슴 속 응어리가 뭉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가해자가 가해를 부정하니 피해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은 숱하게 목격한 성폭력 피해를 무력화해왔습니다. 특정 목소리만 사회에서 들린다는 사실, 그러한 목소리 뒷면에 강력한 위계관계가 존재한다는 진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각 부서별 오리엔테이션을 비롯해 상담소에서의 인턴업무를 수행하며,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그 답을 어렴풋이나마 정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상담소는 수평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모든 활동가들과 인턴들이 서로를 별칭으로 호명하고 존댓말로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직책과 나이와 무관하고 평등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한 공간에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편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침 10시마다 이루어지는 ‘아침나눔’ 시간을 통해 전 날과 당일의 일과를 함께 공유하는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아침나눔 시간동안, 직접 맡은 업무가 아니라도 서로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더라도, 문제 발생 직후, 경과, 추후 개선방안까지 체계적이고 평등하게 의견이 반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껏 제가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왔는지 돌이켜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원활동가님들과 함께 상담소에서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미숙한 제 업무결과에도 항상 긍정적이고 세심하게 피드백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방향키를 바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더 발전한 모습으로, 활동가님들을 다시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이 글은 씨티-경희 인턴십으로 192시간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인턴십 활동을 진행한 '수이'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