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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에 대해서

가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어요. 제가 취소할수는 없나요?

가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어요. 제가 취소할 수는 없나요?

 

 

 

 

 

Q. 안녕하세요. 궁금한 점이 있어 문의드립니다. 작년 10월에 학교 선배, 후배 총 3명이 같이 술을 마셨는데, 제가 술이 많이 약해서 금방 취했거든요. 눈을 떠보니 모텔이었고, 옆에는 A선배가 누워서 자고 있었어요. 너무 놀랐지만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대충 제 옷을 입고 모텔을 빠져나왔어요. 집으로 돌아가면서 A선배에게 집으로 먼저 가니 전화를 달라고 문자를 남겼는데, 다음날 A선배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전화를 걸어 잘 들어갔느냐고 묻는거에요.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 술에 취한 나를 데리고 모텔에 가게 되었냐고 따져 물었더니 오히려 제가 모텔에 가자고 했다면서 오리발을 내미는 거에요. 평소에 많이 따르던 선배여서 사과만 받으면 없었던 일로 묻고 싶었는데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A선배의 태도를 참지 못해 고소를 했고, 어제 법원에서 연락을 받았는데 A선배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이 있는 앞에서 재판을 하던데, 저는 부모님께도 피해사실을 말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국민 참여재판을 취소할 수는 없는 건가요?

 

[From. 여의]

 

 

 

 

 

A. 안녕하세요. 여의님. 작년 10월에 있었던 피해경험으로 마음이 많이 힘들텐데 가해자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는 연락까지 받으셨네요. 국민참여재판이 많은 배심원 앞에서 진행되는 재판이라는 정보에 더 많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일단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안내해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될 때 염두할 사항과 국민참여재판을 취소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서도 말씀드릴게요.

 

 

 

국민참여재판은 왜 도입된걸까요?

 

20074월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0811일부터 발효되면서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재판에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공정한 재판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졌고, 배심원은 배심평결의 공정성과 중립성 때문에 관할 지역에 사는 주민 중에서 무작위로 선정됩니다. 선입견이 최소화된 평균 상식을 가진 국민들의 인식으로 법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국민참여재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우려 섞인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님 사례처럼 가해자들은 끊임없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합니다.

 

 

 

왜 가해자들은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까요?

 

20128월을 기준으로 국민참여재판의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의 무죄율보다 2배 가까운 것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는 단 한명의 무고한 사람도 만들면 안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무죄율이 높다는 점을 가해자들이 악용할 수 있다는 점도 시사합니다. 실제로 올해 초, 일간지를 통해 공개된 대검찰청의 보고서에 따르면 배심원들은 가해자의 의도보다 피해자의 진술번복을 불신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피해자의 진술, 목격자 참고인등의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평결한 사례가 전체 수치의 절반을 넘었고요. 그런데 성폭력 행위에 대한 진술이 분명하더라도, 상황설명에서의 진술번복을 근거로 피해자를 의심하게 된다는 점은 상담소 입장에서는 너무나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가해자들이 악용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생깁니다.

 

 

 

성폭력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하게될 때 우려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국민참여재판에는 다양한 사회적 배경을 가진 일반시민들이 배심원단으로 참여하여 선입견이 사실판단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려는 취지가 있는데, 성문화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이나 인식, 태도가 없는 사회문화 속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이해 없이 자신의 통념대로 평결을 내리기가 쉽습니다. 앞서 지적한 피해자의 진술이 여러번 번복되는 부분도 달리 본다면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뤄진 몸에 대한 침해행위를 구체적으로 진술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없는 배심원이라면 너무나 쉽게 피해자를 의심하고 피고인의 무죄를 평결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폭력 피해의 경우 피해자가 노출되거나 피해사실이 알려지는 등의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하는데, 관할 지역 주민들이 배심원단으로 참여하게 되다보니 지역 소도시인 경우 피해자가 노출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가해자가 신청한 국민참여재판, 피해자가 취소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성폭력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가 신청했더라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9조 제1) 그래서 문의를 해주신 여의님도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재판부에 진정서 또는 탄원서형식으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물론 재판부 판단에 따라 여의님의 거부의사에도 불구하고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하기도 하고, 재판부가 여의님을 설득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 부분은 관련 법이 좀더 구체화 되도록 법개정운동을 통해서 반드시 보완되어야할 것입니다.

 

 

여의님이 지금 무엇보다 걱정이 되는 것은 성폭력 피해경험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성폭력 피해경험이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에 알려지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기억일 수 있지만, 성폭력 피해경험에 대해 누구보다 정확하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판사도 검사도 경찰도 아닌 바로 여의님 입니다. 만약 국민참여재판 또는 증인진술을 하러 재판에 가게 된다면 수많은 배심원 앞에서 부끄러워해야할 사람은 여의님이 아니라 가해자가 아닐까요. 쉽지 않겠지만 저희와 같은 상담기관에서 재판 당일 신뢰관계인으로 함께 할 수 있으니 용기를 내어 보시면 어떨까요.

물론 국민참여재판이 가진 문제점들은 보완될 수 있도록 상담소에서도 열심히 관련 활동을 해나가겠습니다.

 

 

[Fr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