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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생존자와 함께한 대담한 도전: 20주년 특집

대학 성폭력, 떠나는 제자와 남는 교수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에 맞선 20년 - 2000년~2002년 대학 성폭력 사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성폭력에 맞선 20년'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하였습니다. 본 기사는 ["'널 여인으로 만들어 줄게' '안고 싶다' 성추행 교수, 학교 명예 때문에 용서하자?"]라는 제목으로 5월 13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2000년, 일본에 머물던 D대학교 A 교수가 일본인 제자를 성추행했다. 이후 피해자가 해당 대학의 학생회장과 학과장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가해 교수의 사과 및 사임을 요구하면서 교수성폭력 사건이 문제로 드러났다.

이듬해에는 S대학교 B교수가 회식자리에서 대학원생 제자에게 "내가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 "너를 안고 싶다"며 수차례 성희롱하고 성추행한 사건이 발생했고 이후 피해자는 S대 여성위원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위의 두 사건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대학 내 교수 성폭력 문제는 본격적으로 세간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떠오른 교수성폭력... "내가 널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

 얼마 전에도 한 대학 교수가 제자들을 폭행하고 금품을 요구한 사건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드러나지 못하다가 언론에 보도되어서야 비로소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의 학생들은 학업과 진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수를 거스를 수 없어 사건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했다.

 스승은 존경과 예의로 대해야 하며, 스승의 뜻을 거역하거나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게 바로 교수 성폭력이다. 교수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성폭력적, 성차별적 언행을 일삼아도, 학생들은 가해자이기보다 평소 따르던 '스승'이고 자신의 미래와 학업에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교수의 부당한 언행에 즉각적으로 저항하거나 구조를 요청하기 어렵다. 학생인 피해자는 자신의 학점과 졸업, 졸업 후 진로까지 좌우할 수 있는 교수에 대해 문제제기했을 때 따르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001년 S대 사건의 B교수가 피해자에게 "○○양 놀랍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네가…"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협박한 경우만 보아도, 학생 개인이 자신의 '앞길'을 망칠 수도 있다는 부담과 위험을 감수하며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기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성폭력 교수 비호하는 대학 내 카르텔

이 두 사건은 대학내 제자에 대한 교수 성폭력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교수 성폭력을 사소한 일로 치부하며 적극적인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 학교 측의 냉담한 반응과 피해학생을 음해하고 가해 교수를 옹호하며 사건을 축소·은폐하려는 시도가 난무했다. 그 속에서 두 사건의 피해자와 지원자들이 사건을 공개하고 대응하는 과정은 쉬울 리 없었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은 학교 측에 해당 교수를 문제제기했지만 학교 측은 문제해결에 소극적이었다. S대 여성위원회는 총장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S대 측은 학내 인터넷 게시판의 관련 글을 삭제하고 학보사에도 기사 삭제를 요구했다. 이듬해가 되어서야 교원징계위원회를 소집했지만 내용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처리 결과를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가해 교수들은 자신의 지위와 네트워크를 이용해 교수 사회 내 지지 세력을 구축하고 이를 결백 증명과 복직에 이용했다. D대 A 교수는 해임 결정이 나자 동료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명운동을 전개했다.

 동료 교수들은 탄원서에서 'A 교수가 학계와 학교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지대함에도 일본인 피해자의 말만 믿고 학생들의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밀려 해임한 것은 가혹한 처벌'이라고 주장하며 A 교수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A 교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언론 인터뷰에서 해당 사건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피해 학생을 지원한 동료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까지 했다.

가해교수가 확보한 지지 세력은 실제 징계 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A 교수의 요구로 열린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교원징계재심위원회(이하 재심위)는 A교수에 대한 해임징계를 '1개월 정직'으로 감경했다. 재심위는 동료교수 201명의 탄원서와 성추행으로 교수가 해임된 전례가 없었다는 점 등을 들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S대 B교수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려는 학교와 교수들의 압력에 피해자와 지원자들은 고통을 겪었다. 사건이 알려지자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침묵을 강요했고 피해자에게 "학교를 위해 이제 B교수를 용서하라"며 2차 가해를 자행했다.

 

학교 위해서 가해자를 용서하라?

 


▲ 대학의 성폭력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학생들의 모습 2006년 '교수 성폭력 근절을 위한 여성주의자 연대' 소속 대학생들이 신촌에서 성폭력 가해 교수의 재임용 반대 등을 외치는 거리 피켓시위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사건을 무마하고 은폐하려는 가해자와 이를 비호하는 지지집단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두 건의 교수 성폭력 사건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1990년 대 말 활발히 전개된 대학 내 반성폭력 운동의 영향이었다.

두 사건이 발생했던 당시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의 시행과 함께 각 대학에 성폭력 관련 학칙 제정과 상담소 설치가 이루어졌고, 학내 여성운동단위들이 제안한 반성폭력 자치규약이 자리잡기 시작한 때다.

당시 해당 대학 여성 단위들은 발빠르고 강력한 대응을 위해, 개별적 대응과 함께 다른 대학 단위와 함께 '교수성폭력 뿌리뽑기 연대회의'를 결성, 교수 성폭력 문제에 공동 대응했다. 또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여 여성단체들과 연대하며 학내 공론화 작업, 서명운동, 교수 퇴진운동, 법적 대응 등 적극적인 대응 활동을 펼쳤다.

사건 해결을 위한 피해자의 적극적인 의지와 학내 여성운동단위 및 공동대책위원회의 노력이 없었다면 대학 내 교수 성폭력 문제는 드러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두 사건의 대응을 통해 학내 여성운동단위들은 교수 성폭력문제의 심각성을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뿐 아니라 교수 성폭력을 조장하는 성차별·성폭력적 대학 문화에 대한 문제제기와 개선에도 기여했다.

 

떠나는 학생과 남는 교수... 학교는 신뢰를 잃었다

 

  
▲ D대학교 K교수의 복직 이후 학생들의 항의 모습 2008년 K교수의 수업배정 철회와 교수직 해임을 요구하며 침묵시위 중인 D대학 학생들
ⓒ 여성신문

 D대와 S대 측은 결국 피해자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D대 A교수에게는 '권고휴직 2년', S대 B교수에게는 '3개월 정직'이라는 솜방망이 처분이 내려졌다. 피해자들은 민·형사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지만 2년이 넘는 사건해결 과정에서 온갖 소문과 음해, 회유와 압박에 시달리며 심리적·신체적으로 고통을 겪었다.

 결과적으로 교수들의 성폭력 사실은 드러나고 인정되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사건대응 기간 동안 일상과 학업, 직장생활을 원활하게 유지하지 못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 것과는 대조적으로 성폭력 가해 교수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대학으로 돌아와 다시 강단에 섰다.

두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대학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소 설치가 의무화되고 각 대학별로 반성폭력 학칙 및 자치규약이 마련되었다. 대학 내 여성 단위들은 반성폭력 운동을 통해 법적 해결이 어려운 사건들을 성폭력 사건으로 명명하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법을 모색하며 학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교수 성폭력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들어 대학 내 공동체 문화가 쇠퇴하고 여성 단위들의 활동도 크게 줄어들면서 학내 성폭력문제는 좀처럼 나아지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 중이다.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상담실은 내부 기관이라는 한계 때문에 가해자의 직위와 권력에 휘둘리거나 대학 조직을 보호하는 논리에 침해 받기 쉽다. 


현재 대학사회에는 성폭력 상담기관의 설치와 같은 제도적 변화만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에 대응하는 대학의 태도는 여전히 학교의 명예 실추와 가해자 교수의 지위 실추에 초점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특히 학생들의 취업난이 계속 되는 가운데 학점과 어학연수 등 이른바 '스펙'과 교수의 취업추천이 중요해지면서 교수의 역할과 권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로부터 학생들이 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불쾌감을 표현하고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기란 더욱 어려울 것이다.

 

교수성폭력 근절, 폭력을 묵인하는 대학문화 바꿔야 

상황이 이런 만큼 대학 내 교수성폭력 근절을 위해서는 대학과 대학 구성원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대학은 피해자가 교수 성폭력 사건을 문제제기했을 때, 학교로부터의 충분한 보호와 공정한 사건 처리에 대한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처벌과는 별도로 교수성폭력에 대한 엄격한 내규 확립과 집행이 필수적이다. 또한 학생의 미래와 학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수와 제자 간의 위계적 권력관계를 고려해 피해자 중심의 사건 해결을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제자에 대한 교수의 폭력과 부당한 대우를 묵인하고 용인하는 대학 문화에 대한 사회적 차원에서의 성찰이 필요하다. 폭력이 허용되는 범사회적인 문화 속에서 대학내 성폭력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대학당국과 대학 구성원들이 반성폭력 인식을 높이고 폭력적인 대학문화를 평등하고 상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두 사건이 대학사회와 대한민국에 남긴 과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두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기획조직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 "교수의 성희롱, 묻어둘 수 없었다"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