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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김치국물을 쏟으며 성폭력을 생각한다...


_성문화운동팀 보짱


 내가 상담하는 사건의 가해자가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피해자가 차를 끓이다가 뜨거운 물을 쏟아서 화상을 입었다고 한다. 집에서 밥을 먹고 차를 끓이다보니 문득 그 생각이 났다. 가해자가 구속되었다가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들은 심정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떤 심정이었을까....


 반찬그릇을 치우며, 헹주로 상을 닦으며, 컵을 꺼내며 계속 그 생각이 났다. 그러다가 아차 하고 정신을 놓친 사이에 김치그릇이 바닥에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짜증이 왈칵 솟는다. 온 사방에 튄 김치국물을 닦다가 주저앉아서 몽롱하고 허탈한 심정이 든다.

  



 김치국물을 다 닦고서도 계속해서 퀴퀴한 냄새가 따라다닌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도 여전히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몇 번을 문질러 바닥을 닦아도 여전히 찐득한 김치국물이 눌러붙어 있는 것 같다.


언짢은 기분이 사라지지 않는다.


무언가 놓친 게 있나, 계속 돌아보며 생각하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제는...  좀 불안하고 초조해진다.


 

판결문에는 그저 유죄/무죄로만 건조하게 기록될 성폭력 사건들이지만


그 사건을 통과하는 질척한 시간들이 있다. 각자의 사연들과 절박함이 있다. 


이런 마음앓이의 시간들은 무엇으로 보상될 수 있을지, 재판부에, 사회에, 국가에 되묻고 싶다. 


기껏해야 몇 푼의 합의금으로 이 끈적한 불쾌감과 애끓는 고통이 보상될 수 있을까?


 


김치국물을 쏟으며, 성폭력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