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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군형법 제92조의6의 조속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변화는 멈출 수 없다. 위헌 결정 지금 당장”

군형법 제92조의6의 조속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현장

지난 5월 19일 오전 11시, 헌법 재판소 앞에서는 군형법 제92조의6의 조속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됐습니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이하 군성넷)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공동 주최한 기자회견에 상담소도 군성넷에 소속단위로 함께 했습니다.  

 

특히 이날 기자회견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한국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3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며 투쟁주간을 선포하였고, 혐오와 차별에 맞서 성소수자 권리를 요구하는 행사에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는 성소수자의 평등권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성소수자 차별적 제도입니다.  이 법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한 성관계이냐에 상관없이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고 범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내 법제 중 유일하게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으로 성소수자를 범죄화하고, 동성애에 대한 낙인을 씌우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국제 사회로부터 지속적으로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요구받아왔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미 2차례 ‘추행죄’가 법적으로도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나고,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습니다. 작년 4월 대법원도 동성 간의 성행위가 그 자체만으로 ‘추행’이 된다고 본 종래의 해석을 폐기하였고,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은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헌법재판소는 6년째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에 대한 위헌결정 심사를 미뤄오고 있는 것입니다. 변화는 미룰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을 헌재에 똑똑히 알려주기 위해 오전 11시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수많은 성소수자인권단체들과 연대단위들이 함께 모여 목소리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이날 첫번째 발언으로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변호사이자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소송 대리인단 박한희님이 차별없이 복무할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지금당장 추행죄를 폐지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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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입니다. 인천지방법원의 군형법 추행죄 위헌제청사건에 대한 민변 대리인단에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 추행죄로 기소된 장교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습니다. 1962년 군형법 추행죄가 제정된 이래 첫 대법원 무죄판결입니다. 그럼 이로 인해 추행죄의 문제는 해결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추행죄가 갖는 위헌성과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내릴 필요성이 더 커졌습니다. 

 

애시당초 이 법은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이른바 ‘소도미법’을 기원으로 합니다. 이는 대법원 판결 이후 공보실이 낸 보도자료에서조차 미국 전시법의 ‘ 소도미’ 를 ‘ 계간’ 으로 번역하여 처벌하던 국방경비법 규정을 이어받는 것으로 입법취지는 군대 내 남성 동성애 성행위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최초로 제정하고 미국 등 여러 나라에 이식되었던 소도미법은 이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폐지 또는 위헌이 되어 낡은 과거의 유산이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싱가포르는 10년이 넘게 사문화되어 있던 소도미법인 형법 377A를 이 조항의 존재 자체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가져온다며 폐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소도미법을 이어받은 군형법 추행죄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비록 2012년 동성애를 비하하던 용어인 ‘계간’이 ‘항문성교’라는, 마치 성중립적처럼 보이는 용어로 바뀌었지만 이 조항의 위헌성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성 동성애자의 성적행위로 인식되는 것이 항문성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조항에 의해 처벌받은 사람도 압도적으로 남성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이 조항은 여전히 동성애 차별법, 처벌법입니다. 최근 국방부가 군인징계령 시행규칙에서 ‘추행’을 동성 간 항문성교나 구강성교 그 밖에 이와 유사한 행위라고 명시하여 입법예고한 것은 이를 여실히 드러내줍니다. 비록 해당 개정안은 철회되었지만 주무부처인 국방부가 이미 이 조항을 동성애 차별적으로 인식하고 적용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과거 헌법재판소는 이미 세 차례나 군형법 추행죄에 대한 합헌결정을 내렸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의 논리는 지난 해 대법원이 폐기했던 논리, 즉 동성 간의 성행위는 그 자체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추행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제는 대법원도 지적했든 성소수자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반영해서 위헌결정을 선고해야 합니다. 또한 달라진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만이 아닙니다. 군대 내 휴대전화 사용,  병사 급여의 현실화, 병영생활관 현대화사업 등 군 내의 문화와 군인에 대한 인식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군인이기에 일반 시민보다 더 인권을 제한받을 수 있다는 이러한 과거의 인식도 이제는 낡은 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군형법 추행죄를 낡은 과거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군형법 추행죄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 확립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정당하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오히려 군기를 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군대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 사건을 대처하는 조항들이 있음에도, 다른 조항보다 경미한 법정형을 지닌  이 조항의 존재로 인하여 미온적인 처벌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령 장교가 사병 여럿에 대해 지위를 이용하여 옷을 벗기고 성기를 만진 사안에 대해 군 검찰이 군형법 추행죄를 적용하여 기소유예를 한 사례도 있습니다. 군기를 확립하기 위함이라는 군의 변명과 달리 이 조항의 존재 자체가 군대 내 성폭력 처벌을 어렵게 만들고 군기를 어지럽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부정의를 방치할 것입니까

 

헌법재판소에는 민변 대리인단이 참여하고 있는 위헌제청사건을 비롯하여 이미 2건의 위헌제청과 3건의 헌법소원이 계류되어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군형법 추행죄 폐지 권고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헌재는 최초의 위헌제청 후 6년이 넘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지연된 재판은 정의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이 격언을 명심하길 바랍니다. 더 이상 시대의 낡은 유산을 방치하고 부정의를 방조하지 말고 헌법재판소는 즉시 군형법 추행죄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이유로 차별없이 복무할 수 없는 군대를 만듭시다. 이제는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마지막 구호 외치겠습니다.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군형법 추행죄 폐지하라!

두번째 발언으로는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의 기진님이 군형법 제92조의 6이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문제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징병제인 한국에서 의무적으로 거쳐가는 공간이자 노동의 현장인 군대에 명백히 성소수자 차별적인 ‘추행죄’가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존재를 범죄화하는 낙인으로 인한 억압과 혐오에 일상적으로 노출된다고 짚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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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군형법 제92조의6이 성소수자에게 미치는 문제점에 대해 발언할, 다움 소속 기진입니다.

 

성소수자 운동의 역사가 30년째가 된 오늘날에도 성소수자의 치열한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성소수자 운동과 시민 의식은 차근차근 인권 보장의 발판을 밟으며 전진해왔으나, 국가와 정치의 역할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국가와 정치 시스템은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권리를 침해하는 법이 존재하고, 제도적인 차별을 해결해야할 정치 시스템은 이 상황을 수십년째 방관하고 있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성소수자의 권리와 삶을 가로막고 있는 높은 장벽입니다. 이 법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을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으로, 합의한 성관계이냐에 상관없이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고 범죄화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내에서 성행위를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군형법 제92조의6이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이 법이 행위뿐만 아니라 성소수자의 여러 권리를 제한하며 우리 사회 평등의 원칙을 위배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성관계의 합의 여부와 영내, 또는 영외에서 발생했는가, 사적 공간에서 이뤄졌는가를 따지지 않고 동성 군인의 성행위를 처벌해온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판시했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우리 헌법에 명시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에서 도출되는 보편적, 기본적 권리입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성소수자 군인이 가지는 이러한 기본권들을 제한하고 침해하며, 이는 법령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기도 합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을 적용하기 위해 성소수자 군인을 수사하고 기소하는 과정에서 여러 인권 침해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7년, 우리 군은 육군 내의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여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처벌하기 위한 수사를 벌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아웃팅과 인권 침해가 발생하여, 아직도 성소수자 사회에 큰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성적 행위의 대상이 동성이라는 이유로 다른 이성애자 군인과 달리 형사처벌로 차별을 두는 것은 군형법 제92조의6이 평등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징병제를 실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의무적으로 거쳐가는 공간 혹은, 직업 군인에게는 노동의 현장이 되는 군대에서 군형법 제92조의6으로 언제든지 처벌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리고 범죄화로 생기는 낙인 효과는 성소수자 군인의 활동을 억압하고 불평등과 성소수자 혐오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것을 심화시킵니다.

 

군형법 제92조의6은 성소수자 군인을 색출하고 억압하는데 활용되며, 그 법 자체의 위헌성에 더불어 권리침해와 차별과 같은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켜왔습니다. ‘불법’이라는 낙인을 씌우며 성소수자를 색출하고 억압하는데 쓰이는 법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 국제 인권 기구와 시민 단체, 시민 사회가 문제점을 지적하며 위헌을 주장해온 군형법 제92조의6에 대해, 이제 헌법재판소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방치되어 온 성소수자 범죄화의 끈을  헌법재판소가 군형법 제92조의6의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끊어내기를 촉구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군성넷 소속단위로서 연대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성문화운동팀 동은은 군대가 진정으로 집중해야할 문제는 혐오에 기초한 ‘동성애 처벌’이 아니라 ‘고도로 위계화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대응’이고, 동성애 처벌법이 계속 유지되면서 이러한 성폭력의 발생맥락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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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에서 활동하는 동은입니다.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는 국내 법제 중 유일하게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입니다. 종교적 관념에 기반하여 동성애를 범죄화한 이른바 ‘소도미법’에서 그 연원을 찾는 이 법이 2023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동성애 억압적인 법 조항은 그 존재 자체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자 낙인이며, 성소수자들이 스스로 위축되고 고립되도록 강제하는 효과를 만들어왔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죄형법주의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 등에 위반된다는 것을 지적받아왔고, 국제인권기구들로부터 지속적인 권고도 받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법을 유지하는 판결을 3차례나 내렸습니다. 징병제인 한국의 상황에서 이렇게 대놓고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군대 내에 당연히 존재하는 수많은 성소수자 군인에 대한 모욕이자 엄포입니다.

 

또한 군형법 92조의6은 군대 내의 성폭력을 규율하지 않고 동성애만을 규율하는 조항이라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입니다. 이 조항은 성소수자 군인 간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해 왔는데, 이는 성폭력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성적행위로 인식하는 시민들의 상식과도 매우 다릅니다. ‘추행죄’는 성소수자 군인을 잠재적 가해자이자 군대라는 공동생활의 안정성을 와해시키는 존재로 상정하면서 실제로 많은 동성애자 군인들이 군대 내에서 강제추행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합니다. 군대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해야 할 문제는 ‘동성애 처벌’이 아니라 ‘고도로 위계화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입니다. 군대 내 성폭력의 특수성을 제대로 살피기 위해서는 동성애 혐오에 기반하여 성소수자 군인에게 ‘성군기문란’의 책임을 덧씌울 것이 아니라 성폭력이 발생되고 은폐되는 조건을 진지하게 살피는 군조직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행히 작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형법 92조의6에 대한 판결에서 사실상 동성애 혐오에 기초한 종전 판례를 변경하며, 군형법 제92조의6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전통적인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수 의견으로 해당 규정이 동성 간 합의한 성행위에 적용되는 대신 성폭력 범죄로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행위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성소수자 군인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 인권 보장을 위한 새로운 법 적용 기준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사회의 잘못된 편견과 혐오에 기초한 위헌적 상태를 시급히 교정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헌법재판소는 대법원의 전향적인 판결의 의미와 시민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 국제사회의 권고를 깊이 고려하여 군형법 92조의6에 대한 조속한 위헌 판결을 내려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이자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활동가인 정성조님이 추행죄는 동성애 혐오담론의 일환으로서 단지 법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책임의 문제라는 점을 지적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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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정성조입니다.

낡은 역사의 잔재이자 국가 폭력인 군형법 추행죄를 폐지합시다.

 

이번 주는 국제성소수자혐오차별반대의 날이 있는 주입니다. 우리는 이미 성소수자 인권의 수많은 진전을 마주해왔습니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요지부동으로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군대입니다. 군대에서는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러한 경우 범죄자로 전락할 위험이 큽니다.

 

이러한 군형법 추행죄는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역사적 아픔을 담고 있는 낡은 잔재입니다. 이 법은 1962년 군형법 제정 당시 미국 육군 형법 상의 소도미법을 그대로 베껴왔던 것이나 실제로는 이성 간의 추행을 처벌하는 데 간접적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실질적으로 남성 군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데에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6년 판결에서 군형법 추행죄의 판결 요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심판대상조항 중 일반조항에 해당하는 ‘추행’이란 정상적인 성적 만족 행위에 대비되는 다양한 행위태양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그 구체적인 적용범위는 사회적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동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심판대상조항이 말하는 ‘그 밖의 추행’이란 강제추행 및 준강제추행에 이르지 아니한 추행으로,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며 계간에 이르지 아니한 동성 군인 사이의 성적 만족행위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성적 행위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회문화적인 맥락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때 헌재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보수적이고 성별화된 섹슈얼리티 규범, 질병에 대한 이미지와 연결된 동성애혐오, 안보의 문제로 동성애를 지적하는 반동성애 담론의 확산 등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은 우리 사회의 대다수 구성원이 동의하는 규범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낡은 것입니다.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군대 내 인권 문제 개선을 오랜 시간 동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지연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북게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적인 수사를 동성애에 덧입히기까지 했습니다.

 

군형법 추행죄 폐지를 둘러싼 투쟁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마주했던 것은 사법부와 국방부만은 아닙니다. 일부 보수적인 개신교 단체뿐만 아니라 군전역자 및 보훈대상 단체는 군대 내 동성애 ‘문제’가 본격화된 이후 국가와 민족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을 주장해 왔습니다. 이때 동성애자 군인은 단지 존재만으로 국가와 민족에 반하는 것처럼 그려지기까지 합니다.

 

군형법 추행죄는 단순히 국가에 의한 폭력이라는 것보다 넓은 정치적 차원에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법 권력은 어떤 것이 당대의 도덕 관념에 준하거나 반하는 것인지 판단하여, 특정한 성적 위계에 법적,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재판부는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의 기준을 판단하는 중립적 위치로 스스로를 놓지만, 우리는 이러한 판결이 사회적 편견을 법적 언어로 단순히 번역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여론을 하나의 사실로 확정하는 법적, 정치적 폭력임을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과거 동성애 처벌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과를 모두 삭제했고, 호주 빅토리아주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한 과거에 대해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군형법 추행죄가 동성애를 사회적 ‘문제’로 만드는 담론의 알리바이 역할을 하면서 동성애혐오 담론의 순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군형법 추행죄 폐지라는 문제는 단지 법적 쟁점이 아니라 국가의 정치적 책임에 관한 문제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폐지할 것을 요구합니다. 투쟁

 이날 기자회견 자리는 기자회견문을 한국엠네스티 은선님과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랑이 낭독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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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는 멈출 수 없다.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 결정 지금 당장!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역사가 올해로 30년 되었다. 지난 17일 성소수자들은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투쟁 주간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결 같이 외쳤다. 성소수자 인권운동은 차별과 혐오에 맞서 권리를 요구하고, 평등을 추동하며 변화를 위해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오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 앞에서 또 다시 외친다.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변화를 이끈다. 변화는 멈출 수 없다.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 결정 지금당장!

군형법 제92조의6은 군인 또는 준군인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2017년 2월 인천지방법원은 이 조항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헌재에 위헌제청을 했다. 그리고 6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동일한 조항에 대한 시민의 헌법소원이 다수 있었고, 2020년 2월 수원지법의 위헌제청까지 더해지면서 다수의 청구가 병합되어 헌재에 계류 중이다. 심리로는 네 번째다. 2002년, 2011년, 2016년 세 차례 모두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한 것이다. 이 조항이 성적지향으로 인한 차별과 폭력, 낙인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형법상 추행죄는 합의 하에 이루어진 동성 군인 간의 성행위까지 처벌함으로써 성소수자를 범죄화하고 동성애에 대한 낙인을 씌우는 조항이다. 유엔 자유권위원회, 사회권위원회, 고문방지위원회,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등 국제 인권기구들에서도 지속적으로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했다. 그리고 2022년 8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이 조항이 형벌 법규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며, 동성애자 군인의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 의견제출이다.

 

2022년 4월 대법원은 군형법상 추행죄로 기소된 사건에 대하여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의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동성 간의 성행위가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는 평가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더 이상 보편타당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은 군기라는 사회적 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국내외에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지적하고, 동성 간 성행위 그 자체로는 어떠한 처벌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동성애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적지향이고, 동성 간 성행위 역시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행위다. 국가가 법과 제도로 관여할 수 없다. 이러한 성정체성, 성적 권리는 이제 보편타당한 인간의 권리로서 인정 받고 있고, 받아야 한다.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자발적 합의에 의한 행위에 대해 군기나 전투력 보전에 직접적 위해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논리적인 추론이 아닌 동성애 혐오에서 비롯된 무지와 편견이자 차별이다. 2017년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수사 사건처럼 과잉 수사에 쓰이는 법을 유지할 이유가 굳이 없다.

 

지난 30년 성소수자 운동은 부당한 차별과 억압에 맞서서 인권과 사회정의 지평을 확장해왔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고, 그것이 실제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라. 차별과 폭력에 저항하고 맞서는 수많은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적극 참작하고, 국가인권위의 의견과 국제인권기구와 학계 및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지적을 받아들여 하루빨리 이 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 변화는 멈출 수 없다. 군형법 제92조의6 위헌 결정 지금 당장!

 

5월 19일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기자회견을 준비하는 내내 이 법이 2023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1962년 제정된 이래 ‘대놓고 차별적인’이 법이 성소수자 혐오 논리에 기초하여 3차례나 합헌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이 주는 답답함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합의한 성관계’를 처벌하는 이 법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자 낙인이며 동시에 성적 폭력이 무엇인지 은폐하고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입니다.  

 

그렇지만 작년 4월 구시대적인 법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더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법원 판결처럼 헌재의 판결도 ‘시대의 상식’을 반영할 수 있도록 더욱 소리높여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이상 늦출 수 없다! 군형법 92조의6 ‘추행죄 위헌 결정 지금 당장!

 

<이 글은 성문화운동팀 동은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