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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국제연대활동

[활동가국제연대] 올랜도 총기난사사건 1주기에 즈음하여

[활동가국제연대] 올랜도 총기난사사건 1주기에 즈음하여

<이 글은 상담소 활동가 역량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올랜도에 다녀온 안선민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는 만 2년이 넘는 활동가에게 역량강화를 위한 국제연대프로그램의 기회를 준다오래 전 일반기업에서만 근무해 보았던 나로서는 굉장히 놀라운 기회이다10년 이상 근속을 할 때에라야 주어지던 그런 정도와 견줄만한 굉장한 기회다. (내가 근무할 때 당시는 그랬었다.) 근데 2년이 지나면 준다하니 너무도 놀랍고 굉장한 일이라 생각했다.

 

올해 7월, 내가 상담소에서 활동한 지 어느덧 3년을 바라보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렇다. 나에게도 국제연대프로그램의 기회가 온 것이다.

이렇게 놀랍고도 커다란 기회에 기대와 설렘이 있었지만, 주저하게되고 망설여지는 것 또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 기회를 경험한 후에 나는 무엇을 얼마나 이곳에 담아내어야 할지 조금은 많이 부담되어 망설이는 마음도 자리했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환원하기엔 나는 좀 피로하기도 지치기도 또 그리고 나는 무지하게 게으른 사람이기에~~~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시간이 오자 나는 '혹시, 이 기회에 해외(미국)를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욕심이 게으른 나를 부추겼다. 

그렇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기획을 해볼까?'

마침 지난 해 부터 상담소를 비롯한 우리 사회전반을 유독 흔들고 지나간 이슈(나만의 생각일지라도)인  "성적지향, 성정체성"

어떤 사안이든지 본인이 마주 하게 되는 이슈는 다양하므로, 동일한 사건 동일한 문제일지라도 받아들이고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얼마나 다양할 수 있던가, 그런 지점에서 나는 다른 문제들과 함께 이 부분에 대하여 매우 깊은 고민과 문제를 마주했던 시간을 가졌다.

 

이성애자. 그렇다 나는 이성애자이다

이성애자로의 삶을 철저히 교육받고 그 안에서만 살아 본 경험만 가지고 있는 나는, 

나와 성적 지향이 다른 이들을 얼마나 깊이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가.

물론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인간자체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감이라든지 경외심, 배려만으로도 타인을 전부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 아니겠냐는 생각으로 지금에 왔다. 그것이면 된다고 생각했을 뿐.

어떤 공간에서 함께 하게 되거나 했을 경우, 나는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또 제대로 나와 다른 지향의 타인에게 의식/ 무의식으로 차별적인 언행이나 태도 등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건지

이건 정말 나에겐 새로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살면서 딱히 고민해볼 여지나 필요조차 모른 채 지금에 온 것이다


 


올 랜 도

미국의 남부 오렌지 농장을 기반 했던 지역에 디즈니 월드가 세계 최대 규모로 자리하면서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가장 크게 위치한 관관 휴양지 정도로 알던 그곳.


2016년 612일 새벽(현지시각) 성소수자전용 퍼스나이트 클럽에서 성소수자 차별적인 총기 난사 사고가 일어나 49명이 사망한 곳이 바로 그 올랜도다. 작년 그때 한국에서도 이 사고에 충격을 받아 곳곳에서 추모집회가 열렸었다.

그 사고 1주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나는 기억해내고 있었다. 작년 까지만 해도 나와는 다른 세상이라 거리 두고 있었던 이슈가 내 생각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자연스럽게 무작정 그곳에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상담소에 기획을 공유한 뒤 혼자만의 올랜도 미국행을 준비했다.

 

두근두근~ 미국을 나 혼자 간다.

영어도 못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도 턱없이 부족한 내가 이렇게 무작정 겁 없이 당당하게 떨면서 525일부터 64일 리턴 기획으로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총기사고 현장을 갔다

입국심사 때 며칠 머무를 것이냐는 심사관의 질문에 “10-years”라고 대답하고도 손사레를 치면서 no no no를 온몸으로 외치며 “10-days” 라고 정정하면서 혼비백산 허둥대가면서.

옴 부소장의 말대로 영어는 미소와 Body language란 말을 적극 실천해가면서 이렇게 즐겁고도 에피소드 많은 나의 국제연대는 시작됐다.

 

 


경유를 거쳐 18시간의 비행으로 올랜도 도착.

공항을 벗어나면 먹통이 되는 휴대폰 로밍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국제연대는

출국 전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올랜도 현지 유관 기관 3곳에 이메일을 각기 3번씩 보냈으나 아무 답변도 받지 못 한채로 무작정 시작되었다.

 

일단 가장 관심있는 사고현장과 올랜도의 LGBT센터

이곳은 주말에도 오픈한다는 점을 미리 알고 갔기에 먼저 전화를 걸어 방문해도 되는 지 물어본 뒤, 오후 2시쯤 오라는 긍정적인 답변에 고무되어 고고~~


 


527일 토요일  올랜도 LGBT센터<The Center> 방문.

하지만 디렉터는 없었다. 주말과 평일 정규 업무시간 이후에도 이곳은 오픈을 한다. 업무 외 시간엔 자원활동가의 도움으로 문을 연다고 한다 이곳은 에이즈와 C형 간염 테스트를 무료로 해주는 게 주 업무 중 하나였다해서 업무시간외엔 자원활동가들이 무료 테스트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접수만을 받고 있다고 한다.


 


디렉터는 총기난사사건 1주기 준비로 매우 바빠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본인(토요일 센터를 지키던 자원활동가)이 얘기를 전해 줄 테니 화요일 오후 2시경에 다시 방문하라는 얘기를 뒤로하고 사고 장소 현장으로 향했다.

올랜도는 굉장히 시골 같은 느낌의 도시이다.

사고현장으로 가는 길에 미국 국기가 위,아래로 나뉘어 위쪽은 미국 성조기가 아래쪽엔 무지개 색이 새겨진 국기가 집 앞에 걸려있는 곳을 세 채 정도 지났는데 함께 동행해준 지인의 얘기가 이런 장면은 드물지 않다고 얘기해 주었다자기나라 국기에 자신의 성적지향을 표현하고 그것을 자기 집 앞에 걸어 놓을 수 있는 나라. 그곳은 미국의 휴양 관광 도시이다.

우리나라 퀴어퍼레이드 날이 스치는 순간이다.


 


베일 듯 따가운 올랜도 햇살 아래 고져스한 분위기가 찬란한 태양아래 너무도 아름답게 색을 피우는 무지개색의 추모 기념물들이 그 자체로 아련하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총기난사 사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묵념을 하고, 활동가들과 공유할 현장 전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백목련 활동가의 당부대로 활동가 전체 이름으로 추모의 글도 한 귀퉁이에 남기며 이곳에 온 나는 스스로 담담하고도 벅찬 마음이었다.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아직도 나는 그때 내가 가진 그 느낌을, 그 기분을 헤아려 본다 그리고 간직 중이다.

아이엔지(-ing) 중이다.

이 마음이면 될 것 같다고 막연히 느낀다. 아이엔지 중......

언제 까지고 아이엔지 중이면 나는 좋겠다 . 아마도 그럴 것이다.

 


올랜도에 머무는 기간 중 세 번을 모두 방문했지만, The Center의 디렉터는 1주기 준비관계로 센터에 올 시간도 없이 바쁘다고 했다. 센터에서 사고현장 사이의 거리엔 준비 행사 기념 깃발이 곳곳에 나부끼고 있었다.

 

다른 기관 두 곳 정도도 더 방문했다

<Victim Service Center> 는 성폭력을 포함한 범죄 피해를 지원하는 단체이다.

역시 사전 이메일을 보냈었으나 기관방문 약속을 못 받은 채 좀 무리스럽게 방문을 하였고, 다행히 상담원 중 한 분이 잠시 짬을 내어 잠깐 동안 응대를 해주는 행운을 얻었었다. 여덟 분의 상담원이 있어 사전 예약없이도 방문 상담이 가능했으며 그 중 일곱 명의 상담원이 성폭력 피해 상담을 한다고 하니 그곳도 역시 성폭력 범죄 혹은 피해가 많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했다무리한 만남이었으므로 시간을 더 내어 달라고 하긴 어려워 대략적인 인사와 소개 정도만 하고 브로셔와 준비해 간 선물 등을 전달 드리고 돌아 나왔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곳은 찾아 방문은 했으나 만남을 가지지는 못했다.

 

꼼꼼히 준비하지 못한 나의 국제교류협력연대는 이렇게 많은 아쉬움과 과제를 안은 채 끝냈다.

 

그렇더라도 나는 올랜도 총기사고 추모장소에 직접 방문하여 보고 추모하면서 그 자리에 섰던 나의 마음이 그전 보다 한층 달라져 있음을 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계속 ~ing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