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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과 성교육/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⑥] '남자·여자 다움' 강요하는 사회가 낳은 폭력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⑥]

'남자·여자 다움' 강요하는 사회가 낳은 폭력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문제가 나와 멀리 떨어져 있는 뉴스 속 끔찍한 사건이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기 위해 총 10회에 걸쳐 'Upgrade! 反 성폭력 감수성!'을 연재합니다. 성폭력을 둘러싼 고민과 궁금한 점, 그리고 시민들의 일상적인 경험을 나누며 우리의 인식을 점검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성폭력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걸 공유하고 싶습니다. 본 기사는 싫다는데도 강제로...남자친구가 싫어요 '라는 제목으로 09월 6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연애의 목적>에는 자신이 호감을 느끼는 여성에게 남성이 강제적으로 성기 삽입을 하는 전형적인 데이트 성폭력 장면이 나온다.
A씨는 남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고민이 있다며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전화를 걸어왔다.

A씨는 평소처럼 데이트하던 중 남자 친구와 함께 모텔에 갔다. 하지만 성관계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거부했는데도, 남자 친구는 강제로 성기 삽입을 했다.

A씨는 이전에도 남자 친구와 몇 차례 성관계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냥 한 번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이후 자꾸 그 일이 생각나 가슴이 답답하고, 남자 친구 만나는 게 편치 않아졌다.

이는 상담소 전화로도 문의가 많이 오는, 일종의 '데이트 성폭력'이다. 많은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들은 믿었던 사람이 자신의 의사와 감정을 무시한 것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를 호소했다. 게다가 이미 성관계를 맺는 사이여서 자신의 경험을 성폭력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연애 관계를 포함해 서로 성적인 친밀감을 바탕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 성폭력이 발생해도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공개하는 일은 드물다.

성적인 관계나 행위는 당사자들만 공유하는 사생활인 탓에 외부에 알려지기 어렵다. 또 위의 사례처럼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불쾌한 성적 행위로 인식하고 넘어가는 일도 많다. 

자신이 겪은 일을 성폭력으로 인지해도 성관계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여전히 여성에게 도덕적 비난이 중집되는 현실도 사건을 '은폐'하게 만든다.

 

 


데이트 폭력을 유발하는 '남자다움'-'여자다움'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규범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남자다운 남자'와 '여자다운 여자'가 될 것을 요구하고 기대한다. 이러한 기대와 역할 수행 강요는 개인의 다양한 가능성과 특성을 무시한 채 성별 규범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한다.

특히 감정 절제, 강한 육체, 책임감 등을 요구 받는 남성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타인에게 드러내기 어렵다. 그 탓에 남성의 의사소통은 차별적이고 폭력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여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존재로 성장하길 강요받는다. 동시에 여성은 타인을 정서적·물리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하도록 요구받는다. 결국 타인(남성)에게 보호 받으며, (남성을) 보조하는 위치를 강요받는 셈이다.

이러한 성별 규범 내에서 성장한 여성과 남성은 어떻게 될까? 각자 다른 언어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생겨, 결국 데이트 관계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리드하고, 여성은 남성을 돌봐주는 '이성애 연애각본'이 구성된다.

친밀한 관계에서의 성폭력은 많은 경우 이런 '연애각본'에서 오해로 시작된다. 특히 데이트 관계에서 평소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렵거나 각자의 견해만을 고집해 의사소통이 어려우면, 성적 행위에서도 서로의 욕구와 기분을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실제 데이트 성폭력 사건을 해결할 때 살펴보면, 가해자는 피해자도 "암묵적으로 동의했다"며 자신의 행위를 성관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단순히 당사자 간의 견해 불일치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일방적인 성적 행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일례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속담이나 "여성의 NO는 진짜 NO가 아니다"라는 속설은 여성의 거부 의사가 진심이 아니거나, 거부 의사가 있더라도 밀어붙이면 뜻을 굽히게 되어있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피해자 역시 이런 사회적 인식과 자신의 불쾌한 감정, 상처 사이에서 자기의 경험을 어떻게 명명할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기획된 '죽을래 사귈래'라는 노래의 가사가 실제라면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구애 행위로 여겨졌을 것이다.
ⓒ MBC

 


일방적 행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데이트 성폭력뿐 아니라 스토킹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 사회에서 스토킹을 범죄로 인식하게 된 지는 그리 길지 않다. 현행법 또한 처벌의 수위가 미미하다. 스토킹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은 여전히 몇몇 유명인들의 사례만 떠올린다.

하지만 상대방의 고백을 거절했음에도 지속적으로 문자나 전화, 방문 등의 접촉을 통해 만나줄 것을 요구하는 행위는 주변에서 빈번히 일어난다. 게다가 당사자의 주변인들이 이러한 행위를 사랑에 대한 끈기 있는 도전이라며 응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이고 지속적인 구애 행위를 과연 로맨스라고 여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데이트 성폭력 해결은 평등과 소통의 관계에 있다

데이트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평소 대화에서 상대방 의사를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 견해만 강요하면 상대방은 상처를 받고 관계는 삐걱거린다. 마찬가지로 성적 의사소통에서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해야 한다.

물론 남성은 성적인 능력이 탁월해야 하고, 여성은 성적인 관계 요구를 적극적으로 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서 성적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기는 쉽지 일이다. 그러기에 더욱 서로에 대한 일상적 소통을 점차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태도에 변화가 없다면 어느 한쪽만이 힘든 상황을 감내하며 상처 받지 않도록 관계를 정리하는 결단력도 있어야 한다.

더불어 데이트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별 규범을 해체하고, 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감정을 자연스럽게 발현하도록 하는 사회구조적인 노력이 꼭 필요하다. 

특히 태어난 순간부터 끊임없이 요구받는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버리고, 타인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는 교육을 통해 어렸을 때부터 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체화할 필요가 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성별에 구애 받지 않고 평등과 소통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야 말로 데이트 성폭력의 예방과 근절을 위한 작지만 큰 해결책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다미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