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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과 성교육/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②] 성범죄자 신상정보 우편고지, 그 후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

② 성범죄자 신상정보 우편고지, 그 후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오마이뉴스와 함께 [Upgrade! 反성폭력 감수성!]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하였습니다. 본 기사는 "후덜덜... 이웃집에 성범죄자가 산다고? " 라는 제목으로 6월 14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기사 글입니다.

 

  

정부는 2011년부터 성범죄자 거주지역 주민들에게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우편으로 고지하고 있다. 이는 '성범죄자알림e(www.sexoffender.go.kr)' 웹사이트를 통해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알리던 것을 확대한 제도다.

 

우편 고지 대상은 성폭력 범죄자가 거주하는 읍·면·동 지역의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이 있는 세대이며, 최근에는 어린이집 원장과 유치원장, 초·중·고교 학교장에게까지 확대되었다. 고지되는 정보는 성범죄자의 이름과 나이, 주소 및 실제 거주지, 컬러 사진, 성범죄 요지, 전출 정보 등이다.

 

 

  
▲ 이웃에 성범죄자가 산다면? 성범죄자알림e 인터넷 사이트와 우편고지제도를 통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성범죄자 신상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 성범죄자알림e
 

열두 살 딸을 둔 김미현씨(가명)도 작년부터 이러한 내용이 담긴 우편물을 통해 같은 지역에 거주하는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고지 받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 신상이 인터넷에서 공개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던 김씨는 우편물을 받고 크게 놀랐다. 같은 아파트 두 층 아래에 사는 남자가 성폭력 범죄자였다.

 

우리 동네에 성범죄자가 산다고?

 

그때부터 김씨의 불안과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범죄자를 피해 이사하고 싶지만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다. 또 괜히 딸아이가 겁먹고 위축될까봐 성폭력 범죄자가 가까이 거주한다는 사실도 이야기하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만 커지고 있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제도는 잠재적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성폭력을 예방하고 재범을 방지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공개된 신상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게다가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는 성범죄 우려가 있는 자를 확인할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이웃에게 알리거나 상의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정보를 접한 시민들은 김미현씨처럼 성범죄자가 주변에 거주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이사 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떠올리기 어렵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제도는 활용 방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나 현황 점검 없이 여론에 편승해 공개 범위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는 재범 방지와 범죄 피해에 대한 시민 스스로의 보호라는 본래의 취지보다는 성범죄자에 대한 보복 감정에 기초한 처벌적 효과만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 탓에 시민들이 성폭력 범죄로부터 전보다 더 안전하게 되었는가도 의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발생한다. 그럼에도 연일 이어지는 끔찍한 성폭력 사건 보도는 성폭력을 '낯선 사람에 의한 통제 불능의 사건'으로 만들어 시민들을 불안과 공포에 떨게 한다.

 

정부는 성폭력 예방 및 근절 대책, 가해자에 관한 정책과 예산 등 성폭력 범죄자의 변화를 위한 교정·교육보다는 전자발찌, 신상공개제도 확대 등 처벌과 격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성폭력 범죄자들이 감옥이 아니라 바로 집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더욱 어렵게 한다.

 

게다가 무조건적인 퇴출과 배제는 '괴물'을 변화시키거나 재범을 방지하기보다는 사회 불안만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다. 시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가해자를 피해 이사하거나 철저히 고립시키는 방법 뿐이다.

 

뉴스에서 옆집으로 온 성폭력 범죄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성폭력은 언론이 보도하는 것처럼 몇몇 정신 이상자, 사이코 패스 등에 의한 일탈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와 문화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다. 여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남성중심적 문화, 여성을 무기력하고 약한 존재로 규정하는 성별 고정관념,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을 허용하고 묵인해온 사회문화가 만들어낸 범죄다.

 

때문에 성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구성원 간의 위계가 강하고 폭력이 허용되는 사회일수록 성폭력 범죄 발생률도 높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살펴보아도 일상의 위계적 권력관계가 성폭력의 중요한 배경임을 알 수 있다.

 

성폭력 가해자는 언론에서 주로 보도하는 것처럼 낯선 사람이 아니라 대부분 이웃, 가족, 동료 등 일상을 함께 하는 주변인이다. 사실 신상 공개제도로 알려진 성폭력 범죄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드러나지 않고, 신고조차 되지 않은 가해자들은 이웃뿐 아니라 학교, 직장, 길거리 등 어디에나 있다. 때문에 아무리 노력해도 성폭력 가해자 모두를 사회에서 격리·퇴출시키기는 어렵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 이후, 범죄자는 물론 그 가족들까지 이웃에게 왕따를 당하고, 성범죄자가 산다는 사실 때문에 해당 마을이 '성범죄자 동네'로 낙인찍힌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성범죄자 신상 공개제도를 시행하는 외국에서는 성범죄자들이 거주할 곳을 못 찾아 다리 밑에 모여 사는 사례도 있다. 

 

가해자의 격리와 퇴출을 통해 만들고자 하는 사회가 이런 모습은 아닐 것이다. 결국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당장 눈앞에서 성폭력 범죄자들을 없애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두려움의 실체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바꾸기 위한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방법과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 성폭력가해자,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면? 성폭력,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사회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폭력가해자상담원을위한 역량강화 워크숍> 포스터.
ⓒ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 예방과 근절은 우리의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관계와 문화를 변화시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즉, 성폭력 범죄자를 만들고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문화와 시스템을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물론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과 범죄자 자신의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범죄자 개인의 반성과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를 만들고 성폭력 범죄자들을 양산해낸 사회가 공동의 책임을 갖고 이들에게 변화의 기회를 주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

 

성폭력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하고 나아가 이를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몇몇에게만 책임을 물어선 안 된다. 시민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받아들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위치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책임을 나눠야만 한다.

 

즉, 우리의 일상과 관계를 평등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안전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 동시에 성폭력 범죄자들의 변화를 위한 사회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하며 이웃들과 마을의 안전을 함께 고민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국가 역시 성범죄자 신상 정보만 알려주고 성폭력 범죄에 대한 통제와 감시의 부담을 시민에게 부과할 것이 아니라 사회전반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폭력 범죄자들을 아무리 사회에서 격리하고 퇴출시켜도 성폭력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느끼는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도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이웃에 성폭력 범죄자가 거주한다는 정보가 담긴 우편물을 받고 공포에 떠는 김미현씨에게도 성폭력과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자신과 가족들, 이웃들의 태도를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성폭력을 조장하고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는 사회에 문제제기하고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김미현씨는 우선 그동안 얼굴도 잘 모르고 지내는 이웃들과 친해져야 한다. 이어 이웃과 함께 지역의 성폭력 예방과 근절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한 지자체나 경찰 등 지역사회의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모색하는 것도 필요하다.

 

성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이런 시도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무기력하기만 했던 공동체 구성원들의 불안 수준을 낮춘다. 불안과 공포가 줄어든 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안전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두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입니다

 

 

출처:  후덜덜... 이웃집에 성범죄자가 산다고?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