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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감수성과 성교육/性깔있는 성교육

[性깔있는 성교육] 우리 아이의 성! - ⑧ 아이에게는 性이 없다!?

 

 

 Q.1 남편이 목욕을 하고 나면 옷도 안 챙겨 입을 뿐만 아니라 수건으로도 가리지 않고 알몸인 채로 욕실 밖으로 나옵니다. 우리 집엔 세 살짜리 딸이 있는데요. 딸 보기 민망하니까 옷 좀 입고 나오라고 그렇게 말해도 남편은 아직 애가 어린데 뭐가 어떠냐고만 하며 막무가내예요. 아직 어리긴 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신과 성이 다른 부모의 나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교육상 괜찮을지가 걱정되네요.

 

Q.2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섯 살짜리 딸이 있습니다. 동네에서도 그렇고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그렇고 주변 어른들이 귀엽다고 자꾸만 "이쁜~ 짓!" 이런 말을 하면서 우리 딸에게 곧잘 자신들의 볼이나 입술에 뽀뽀하게 합니다.  저는 그게 보기에 영 불편합니다. 나이 든 남자 어른들이 그럴 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어요. 제가 과민반응을 보이는 걸까요?

 

A. 이번 질문은 참 어렵습니다. 가족의 특수성, 개인과 문화의 차이에 따라 조언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가족 모두가 옷을 벗고 다니는 것, 스킨십 하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누구 하나 불편한 마음이 없다면 만사 오케이겠지만, 한국사회에서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이번 조언은 제가 접하고 있는 문화권 안에서, 제가 만나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참고로 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따라서 정답을 드린다기보다는 성교육자로서 제가 드릴 수 있는 최대한의 조언이라는 말씀을 먼저 해야겠네요.

 

두 질문 모두 누구나 아이를 대할 때 무심코 하기 쉬운 행동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린이를 말 그대로 ‘뭘 잘 모르는 어린애’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아요.

게다가 개인보다는 가족을 중시하고, 맺고 끊기보다 우리 모두 한 가족이라는 친밀감을 중요시하는 한국문화의 특수성도 한 몫 하는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를 인격체로 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 반갑습니다.

아이 앞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으시는 아빠들이 많습니다. (딸아이가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이런 경우가 있더라구요!) 씻거나 옷을 갈아입을 때가 아니라도 윗옷을 벗고 계신 분들도 있으시고요. 답을 먼저 드리면, 부모의 벗은 몸을 함부로 보여주는 것은 교육상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크게 두 가지를 짚을 수 있는데요,

첫째, 아이들이 가장 먼저 보고 배우는 것이 집 안에서의 부모의 행동입니다. 성과 관련된 행동과 마찬가지로 옷을 벗는 것은 사적인 행동이고, 그에 적합한 공간이 있어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 줘야 합니다.

설사 아이가 지금은 아직 잘 모른다고 해도 곧 클 거고, 집이 부부 둘만 사는 공간이 아니라면 조금씩 훈련한다는 마음으로 바꿔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벗은 몸을 봐야 한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심하게 말해서) 폭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둘째, 남성들은 옷(윗옷)을 벗고 있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가족끼리 자유롭게 서로의 몸을 보거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옷을 벗는 경우는 90퍼센트가 아빠거든요. 지금 아이 앞에서 ‘교육’ 목적으로 벗은 몸을 보여 주신다는 엄마들도 계신데, 아이가 다 큰 다음에도 그럴 생각은 아닐 거예요.

“엄마는 옷을 벗고 다니지 않는데, 아빠는 그런다. 그런데 엄마는 여자고 아빠는 남자다.” 아이가 이런 식으로 성구별 공식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사소한 것들이 그 사회의 성 의식과 문화를 만드니까요.

 

특히 성교육을 하면서 10대 아이들을 만나면서 느낀 건데요, 여자 아이들은 자신의 몸을 너무 보호, 통제하려고만 하고, 반대로 남자 아이들은 자신의 몸에 대한 사적인 감각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이 역시 우리 사회, 가족의 문화를 반영하는 거죠. 자신과 타인의 몸과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배려, 아이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함께 만들어 나갔으면 합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볼까요?

아이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너무 예뻐서 손가락도 만져보고, 발가락도 잡아보고, 볼도 쓰다듬고 싶어집니다. 저처럼 아이가 예뻐도 딱히 뽀뽀하고픈 마음까지는 연결되지 않는 어른도 있습니다만, 따님에게 뽀뽀를 해 달라 한 어른들은 그런 마음이었을 거예요.

이런 문제를 대응하는 데는 개인차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분들도 계시고, 마음이 불편해지는 분들도 계시지요. 그건 나이와 개인별 문화 차이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이가 조금씩 자기표현을 할 때가 되었을 때입니다. 이것 역시 아이마다 개인차가 있어서 정확히 나이를 제시하긴 어려워요. 어른들이 아이에게 뽀뽀를 시킬 때 아이가 불편함 없이 자연스럽게 행동한다면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손을 뻗어서 어른의 얼굴을 막는다거나 등의 싫다는 의사표시를 할 때는, 억지로 뽀뽀를 하거나 함부로 만지거나 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이런 표현을 할 때는, 아이가 갖는 느낌에 대해 확신을 주세요. 싫으면 참지 말고 조금 못된 아이가 되더라도 자기표현을 하라고 해 주세요.

아이들은 늘 알게 모르게 착한 아이가 되야 한다는 학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싫다”고 말하는 훈련이 잘 되어있지 않거든요. 또 참고 양보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 우리 문화라서 더욱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부모님들 사이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문화운동차원으로 널리널리 공유하시면 아이를 대하는 어른들의 마음가짐이 좀더 빨리 달라지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는 아이나 부모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마음대로 스킨십을 하거나 만지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자 아이의 성기를 대놓고 만지작거리거나 “우리 손주 고추 얼마나 컸나 보자”며 바지를 내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죠.

요즘은 어른들이 불쑥불쑥 아이의 성기를 만지는 일은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무성적인 존재로 ‘취급’받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자위를 한다고 깜짝 놀라는 것, 아이 앞에서 벗은 몸을 보여주거나 아무 때나 스킨십을 하는 것, 이 모두 아이들을 성적인 존재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건 아이들에게는 사생활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을 개별적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도 일기장을 보려 하고, 방문을 닫고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지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성교육을 하신다면, 아이들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으로 보는 '훈련'도 함께 해야 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괜찮다” 이런 마음 보다는, 아이가 곧 클 텐데 얼른 ‘훈련’을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性깔 있는 성교육>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 갑니다.  性깔있는 성교육에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있는 성교육책으로 엮어질 예정이랍니다! 같이 나누고 싶은 고민과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문학동네 어린이 네이버 카페 방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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