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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상담소 소모임 활동 후기

[후기] 내가반한언니 6월 모임: 내가 사랑했던 것들

6월 모임의 리-다인 윤정님이 새로운 방법으로 모임을 제시해 주셨어요. 영상물을 보고 이야기 나눴던 기존 방식과 달리, 이번에는 '내가 사랑하는/했던 것들'을 주제로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써와서 모이는 것으로 모임을 열었답니다. MT 마지막날 새벽,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잔잔하고 여운 남는 모임이었어요.

 

그날 참여했던 회원 중 신아만 유일하게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제로 가져왔는데요, 신아가 사랑하는 것은 신아의 룸메이트, 강아지 도레였습니다. 도레는 상담소 연대의런데이 홍보영상에서도 등장한 적 있는 강아지인데요, 세~네명의 인간 언니들과 함께 살고 있답니다. 신아는 도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대요. 원래 자기 옆에서만 잠을 자던 도레가 다른 룸메이트의 침대에서도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저도 모르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대요. 왜 내가 섭섭해할까 고민하면서, 성숙한 사랑이란 조건없이 돌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간 해온 사랑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고 해요. 그러나 도레에 대한 사랑은 오염되지 않는 어느 곳에 영롱하고 아름답게 그대로 있다며, 도레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기도 했답니다. 지금은 따로 살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저의 고양이 동생 보리가 참 많이 생각났어요.

위풍당당 도레! (사진제공: 멍불출 신아)

다음 차례는 모임의 이끎이, 윤정님이었어요. 윤정님은 최근 이직을 하며 정든 영등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있는데요, 영등포에 있는 집결지에 아웃리치를 나가는 성매매여성지원센터에서 일을 하면서 겪은 시간들이 

영등포는 굉장히 모순적인 동네입니다. 한편에는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고층 호텔, 화려한 타임스퀘어가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기피 대상'인 쪽방과 성매매 집결지가 있어요. 윤정님 표현으로는 '통상 이질적이고 혐오스러운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들과 공존하고 있다' 고 해주셨어요. 그 안의 역동, 긴장을 직접 부딪치고 배우며 매력을 느끼셨다고 해요. 영등포에서 만난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 더 많은 가능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센터에서 일했는데, 갑자기 이직으로 활동의 터전을 떠나면서 감정적으로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합니다.

영등포의 화려함, 타임스퀘어. 타임스퀘어 뒷문에는 쪽방촌과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 (출처: 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20062446911)

상담소의 경우에는 명확한 '공간'을 대상으로 운동을 하는 단체는 아니지만, 모임에 참여한 분들이 이전에 거쳤던 현장 중에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활동이 많았어요. 그래서 공간에 대한 사랑의 감정 담뿍 이해하며 이전의 경험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점들을 사랑했는지 질문도 나왔는데요, 아웃리치에 갔을 때 있었던 소소하고 재미있는 일화도 많이 이야기해 주셨어요. 물품지원을 쉽게 하려면 차가 필요한데, 담당 활동가 중 누구도 면허가 없어 카트를 마련해 끌고다녔던 일이나 쪽방에서 만난 언니들이 주신 커피에 대한 이야기 등 듣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일화들이 많았어요.

 

현장에 직접 나가 '언니들'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업소에 들어가는 일은 참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낯선 곳으로 진입하는 두려움과 긴장, 경계심 가득한 사람들을 만나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관계가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윤정님은 현장의 강렬함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해 주셨는데, 그 마음에 공감이 되었어요. 이전에 윤정님이 여성단체 활동가를 동경할 때 '구체적인 나의 현장을 갖고 싶다'고 생각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현장을 만나 부딪치고 깨지며 만들어온 윤정님의 '현장'에 대한 애정이 물씬 느껴져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제 차례였는데요, 저는 사랑했던 두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 친구는 게임을 하다 친해진,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많은 영향을 주었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와 저는 공통점이 참 많았는데, 학교를 답답해하는 것, '나'를 둘러싼 세상이 무언가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할 수 있는 게 공부밖에 없다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화가 나있다는 것, 같은 반 남자애들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갑자기 여자애들을 편가르기 하며 아랫사람 대하듯 구는 게 화가 난다는 점 등등이었어요. 게임을 하다 만난 친구기도 하고, 그 친구가 청주 사람이어서 한번도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그 친구 덕분에 저는 광우병 집회에 갈 용기도 먹어보고, 샘솟는 반항심을 이상한 곳으로 튀지 않게 서로를 잘 위로해주었던 친구였습니다. 그 친구가 고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 연락은 끊어졌지만 그 친구가 제게 준 용기가 남아 활동가 닻별이 지나온 길을 이끌어온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사랑했던 것은 저의 모교입니다. 정확히는 제가 졸업한 대학인데요, 활동가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공간입니다. 그 공간에서 저는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을 만났고,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직접 기획/실행해보기고 했고,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시민사회의 영역으로 가기 전, 학생사회라는 작은 단위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기도 했고요. 명확히 칭할 수도 없는 공동체를 참 많이 사랑했어요. 지금은 좋아했던 많은 것들이 어그러지고 사라졌기 때문에 과거형으로 남았지만, 둘 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해 준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대동제를 앞두고, 축제 비품으로 준비한 대형 튜브에 친구와 누워있는 닻별. (오른쪽)

 

리나님은 사랑했던 것으로 전 조각보 사무실이 있던 망원동을 소개해 주셨어요.

당시 살던 곳이 고시원이라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곳이었는데, 그 때 조각보 사무실에 많이 갔다고 해요. 이전에 내반언 모임이 끝나고 조각보 사무실에 가는 리나에게 '워커홀릭'이라고 했던 게 불현듯 생각이 났답니다. 알고보니 일만 한 것은 아니고 자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며 말문을 이어 준 리나 님은 내 정체성을 숨기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경험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내가 존중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 조각보 사무실이 참 좋았다고 해요. 비온뒤무지개재단과 함께 쓰는 사무실이었는데, 리나 님과 함께 최다출근 기록한 사무실메이트 고양이도 함께 소개해 주었어요. 그 친구는 사무실에서 키우는 고양이는 아니고 망원동 일대에서 친근하고 뻔뻔하기로 이미 유명한 고양이였는데요, 어느 날 갑자기 사무실로 밀고들어와 자리를 잡았다고 해요. 늘상 사무실에 있는 것은 아니고, 활동가들이 주는 밥과 물, 거친 바깥 날씨에 안온하게 몸 누일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여기저기를 누비는 고양이라고 합니다. 리나 님이 사무실에 갈 때마다 문 앞에서 출근자를 기다리기도 하고, 함께 퇴근하기도 하면서 많은 동질감과 유대감을 느꼈다고 해요.

조각보 사무실. (사진 속 사람은 비온뒤무지개재단 활동가!)

지금은 비온뒤무지개재단 사무실도 이사를 했고 리나 님도 커밍아웃하고 다닐 수 있는 직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과거형이 되어버렸지만, 그 때 그 공간이 주었던 안정감을 소중히 소개해 주셨습니다.

리나의 사무실메이트, 길고양이 

마지막으로는 동주 님이 애정했던 디즈니 영화, 헤라클레스를 소개해 주셨어요.

헤라클레스는 전형적인 디즈니 영화인데요, 처음에는 괴물이었던 존재가 노력해서 영웅이 되고 세상을 바꾸는 서사구조입니다. 어릴 때는 괴물이라는 위치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서 끝내 성공을 거둔 헤라클레스가 참 멋있어 보였지만, 크면서 '세상에 노력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있구나.'를 깨달으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요. 노력은 결국 지배구조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고, 거기서 나 혼자 예외가 된다는 뜻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성공하는 존재를 꿈꿨던 예전과 달리 낯설게 헤라클레스를 보게 되었다고 해요.

노력하기 전의 헤라클레스.
영웅이 된 헤라클레스.

동주님은 어린 시절 디즈니 감성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화려하고, 멋있고 인기가 많은 만들어진 세계를요. 그러나 '낯설게 보기'를 하게 되면서, 좋아했던 감성이 자본주의의 논리를 열심히 알려주고 사회에 순응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종의 아메리칸 드림을 심어주고 채찍질하게 해주는 도구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고 해요.

 

다섯 사람이 나누어진 이야기를 들으며, 결국 내가 사랑했던/사랑하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것들이어서 이야기 나누어준 분들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영화나 영상매체는 없지만 즐거웠던 이번 모임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음달에 만나요!

 

<이 후기는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닻별이 작성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