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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후기] 31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 후기

나는 전신 만성통증질환인 섬유근육통 환자다. 20대 초반 발병 이후 10여 년째 아픈 몸으로 살고 있다. 살고 있다는 표현이 적 절한 것인지 모르겠다. 삶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나는 살고 있기도 하고, 아직 살아는 있는 것이기도 하고, 더 드라마틱하 게 절망적인 서술도 가능할 듯하지만 패스하기로 하고.

 

섬유근육통 환자는 양지바른 곳에 가만히 내버려둬도 혼자 잘 아프다. 뭔가 좀 덜 아픈 것 같아 보일 땐 고온다습한 환경을 제공 해주면 언제 괜찮았냐는 듯 다시 병색을 되찾을 것이다. 올해 나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병원이 아닌 집에서 여름을 나는 중이 다. 지난 몇 년간 여름 기운이 느껴질 때쯤 병원에 실려갔고, 퇴원할 땐 이미 완연한 가을이었다. 그래서 까먹었다. 내가 여름에 어떻게 되는지. 그렇게 (빡세기로 유명한)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을 신청했고, 수강 2일차 욕창 재발을 시작 으로 종강 2일 전 고막파열에 이르기까지, 신체 부위 하나하나를 바쳐가며 죄를 갚았다. 패기라는 죄. 만약 추후 한국성폭력상 담소에서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생 모집할 때 신체건강을 체크한다면 나 때문일 것 같다. 양해 부탁 많았던 점 양해 부탁드립니 다. 활동가님들 사..사..ㄹ....

 

교육 시작 전 배송된 교재에 두근(2021 썸머 31기 리미티드 굿즈 바이 한성폭), 맨 앞 커리큘럼에 두근, 도합 네 근..? (ㅋㅋㅋㅋ ㅋㅋ아 세상 막 사는 기분) 교재는 유사시 자기방어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엄청난 두께로 떡제본 되어왔고, 커리큘럼은 총 100시간의 교육 일정이 시간 단위로 짜여 있었다. 커리큘럼이 말하길: 여성주의 관점에서의 성폭력 상담 관련 모든 분야를 다 룰 것이며, 그것은 정교하고 체계적인 계획 아래 이루어질 것이며, 모든 일정은 단 한 번의 변경도 조정도 없이 적힌 대로 진행 될 것이다. 커리큘럼이 옳았다. 틀린 건 우리의 체력, 우리네 삶의 예측 불가능성.

 

폭염과 함께 진행된 지난 3주 간의 교육. 그 어느 때보다 탈수에 유의해야 할 시기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이주여성을 보며 울고, 장애여성을 보며 울고, 친족성폭력 생존자를 보며 울고. 너무 많고 너무 다양한 성폭력을 보며 기가 차 토해가며 울었다. 매일 저녁 교육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내 상태를 본 파트너는 조용히 에어컨을 켜고 달달이를 챙겨주었다. 너 너무 울어서 귀까지 빨개. 당 충전하고 일단 눈 좀 붙여. 비교적 외관이 보송보송한 날들이 있었나보다. 그럴때면 오늘 뭐 배웠 냐고 묻던 파트너가 빅데이터를 활용한 가설을 세웠다. 너, 청소년 관련 이슈에는 타격을 안 받나봐.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청 소년 관련 내용은 집중부터가 잘 안 됐다. "보호라는 명목으로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제한하면 안 된대. 맞는 말인데 거부감이 생겨. 어떡하지 나 꼰댄가봐." "꼰대가 되기엔 권력과 자원이 부족하다는 생각 안 들어?" "나 지인짜 솔직히 말하면 그냥 위험하 니까 하지마! 하지 말라고! 끝! 이러고 싶다. 이래도 꼰대 아니야?" "조선시대였으면 성균관 장의도 되었겠는데." "나 꼰대만큼 은 되고 싶지 않아. 도와줘. 내 빻은 생각들 아예 빻아버려줘." (긴 대화) "알겠네. 딱 그거네. 너한텐 청소년기에 좋은 성경험이 가능하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거네. 청소년기 성경험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는 건데, 너한텐 청소년기 성경험 이퀄 백퍼 성폭력 이네. 너무 극단적인 거 아냐?" 이 말을 듣는데, 순간 시야가 나갔다. 있는 줄도 몰랐던 마음 속 어딘가의 둑이 무너지고, 기억의 해일이 정신을 완전히 압도했다. 그저 하염없이 울었다. 몸이 없는 사람처럼 울었다. 인간 몸의 한계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 은 울음. 밤에 울기 시작했는데, 울다 보니 아침 9시40분. 20분 뒤 수업 시작 실화인가, 했던. 10대 때의 첫 성폭력 피해 이후 뒤 는 쳐다도 안 보고 앞만 보고 걸어왔다. 잊고. 참고. 홀로. 앞으로. 그러다 진짜 잊어버렸던 거다. 그래서 이런 어른이 되어버리 고 말았다.

 

사실 그때, 성폭력 피해 직후에 유일하게 도움을 청했던 곳이 한국성폭력상담소였다. 나는 당시 탈학교 가출 청소년이었고, 학 교도 가족도 신뢰하지 않았다. 세상과 어른들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와주세요, 비슷한 제스처나마 취했던 것이 그날 한국 성폭력상담소에 전화를 걸었던 것이었다. 처음 몇 번은 아무 말 못하고 끊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상담소 근처 공중전화에서 상 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불은 켜져 있어, 하며. 몇 시간 동안 근처를 서성이다 마지막이다, 하고 전화를 걸었고, 따뜻한 건 지 차가운 건지 잘 모르겠는 목소리에게 물었다. 가출 청소년인데 거기서 도움 받게 되면 가족에게 연락이 가나요. 그렇다 했다. 거기서 도움 받으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야 하나요. 그렇다 했다. 너무 춥고 힘든데 쉼터에서 오늘 밤만 있다 가면 안될 까요. 일단 오라고 했다. 근데 가면 저한테 뭐 물어보실 건가요,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아무 얘기도 하지 않으면 도와주 기 힘들다고 했다. 그냥 딱 몇 시간만이라도 쉬다 갈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절차상 기본적으로 물어야 할 게 있다고 했다. 나는 그냥 그러면 괜찮다고, 전화를 끊고 기차역으로 가서 아무 기차나 탔다. 평생 잊고 살다가 성폭력전문상담원교육 수료식 전날 불현듯 떠오른 기억.

 

그 이후로 15년이 흘렀다.

 

떠나온 존재가 다가올 존재와 만나는 지점에 구원이 있다. 그때의 나는 아직 그 공중전화 앞에 멈춰있다. 네가 올 수 없다면, 내 가 너에게 갈게. 엉망진창이지만 어쨌든 어른이 된 내가 너에게 갈게. 나는 나를 살리고 싶다.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싶다

 

 

 

-이 글은 31기 성폭력전문상담원 기본교육 수강생 고재영님이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