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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소는 지금

[후기] 법조인으로서 가져야 할 성폭력에 대한 마음가짐

 

[후기] 법조인으로서 가져야 할 성폭력에 대한 마음가짐

2021년 2.2~2.8 5일간의 로스쿨 동계법무실습을 마치고 

 

 

입법과 사법, 정책과 제도에 여성의 눈으로, 피해자의 목소리로 개입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을 하는 상담소에서는 정기적으로 예비 법률가들의 실무수습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2021년 2월 2일부터 8일까지 5일간 동계 법무실습이 있었는데요, 이린, 원충연, 이예림, 임은지, 홍기정 다섯분이 활동했습니다. 4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반성폭력운동과 법정책 변화의 역사를 살피고, 강간죄에서 최협의 폭행협박설의 문제를 톺아보는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최근 3년간의 친족성폭력 판례, 최근 2년간의 현저히 저항이 곤란했는지를 판단한 강간판결을 모니터링하고 분석했는데요, 올해의 동계 법무실습 후기를 공유합니다.

 


[2.2 자기소개 및 오리엔테이션]
아직은 조금 낯설었던, 실무수습팀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자신을 요약할 수 있는 세 가지 키워드와 함께 상담소에서의 개인적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는 상담소 내 팀들에 대한 세부적인 소개를 들으며, 그동안 성평등한 한국 사회를 위해 상담소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배워갔습니다. 또한 법조인으로서의 우리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가는 발걸음에 함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3 강간죄 최협의설 관련 세미나]
2일차 오전에는 형법 제297조 강간죄 개정 관련 강의 및 토론이 있었습니다. 현재 형법상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고, 그것을 최협의설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통설과 판례의 입장인데, 이에 대한 비판론을 학습하였습니다. 기존 법률에 대한 비판에 이어서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비동의강간죄 개정안을 살펴보았습니다. 동의 없는 성행위가 얼마나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고, 어떠한 억압적 요소가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며, 과연 그것을 어느 범위까지 형사처벌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기회였습니다.

2일차 오후에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지난 3년간의 친족성폭력 판결을 분석하는 작업과 지난 2년 간의 ‘현저히 곤란’이라는 문구가 들어간 성폭력 판결을 분석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기초적인 검색 방법을 확인한 후 과제 진행 방향을 논의하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했습니다. 저희 5명은 두 개 조로 나뉘어 3명은 친족성폭력 판결문 작업을, 2명은 ‘현저히 곤란’ 판결문 작업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2.4 판례분석 작업]
코로나로 인하여 각자 집에서 판례를 검색하고 정리하였습니다. 두 명은 2019년부터 2020년까지의 성범죄 관련 판례 중 ‘현저히 곤란’이라는 키워드가 있는 판례를 분석하였고, 나머지 세 명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친족성범죄를 다룬 판례를 검토하였습니다. 최근 판례에서도 여전히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최협의설에 따르는 경우가 발견되어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습니다. 

[2.5. <의제화간의 메커니즘> 세미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윤진 교수님의 논문을 읽고, 강간죄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간죄의 보호법익과 구성요소를 살펴보고, 최협의설과 판례의 판단기준을 고찰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강간죄에 적용되는 최협의 폭행·협박설을 비판하고, 강간죄 개정의 필요성과 방향에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8. 판례분석발표회]
실무수습기간 동안 진행한 ‘현저히 곤란’ 키워드를 포함한 판례 및 ‘친족성폭력’을 다룬 판례 조사 결과를 정리 및 발표하였습니다. 또한 조사 대상 판결 중 다섯 개의 판결을 골라 각자가 작성한 판례평석을 발표한 후 판례평석에 관한 토론을 진행하였습니다. 토론 과정에서는 실무수습팀이 판례평석에서 다룬 쟁점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판례평석에 담긴 사고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나 아쉬운 점, 보완할 점 등을 적절하게 지적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조사 대상 판결 중 왜 해당 판례에 관한 평석을 작성하기로 하였는지를 여쭤보셨고, 그 과정에서 각자가 주목하고자 했던 문제의식 등이 명확해지기도 했습니다. 일주일 간 상담소에서 수차례의 세미나, 발제 및 토론 등을 진행하면서 배운 지식과 관점이 총정리되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동계법무실습, 어땠나요?


린 _ 법조인으로서 성폭력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언제나 추상적인 고민에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상담소에서 문제의 근본을 들여다보고, 더 배워가야 할 점과 실천해야 할 부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기존의 법뿐만 아니라 평등한 사회에 발맞춰 가는 법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예림 _ NGO에 출근하는 것도, 성폭력범죄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더욱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하시는 다양한 활동 소개를 들으며 성범죄 생존자들의 아픔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고, 강간죄 개정운동에 대한 세미나를 듣고 의제화간에 대한 토론을 진행하면서 최협의설이 어떤 점에서 문제가 되는지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변호사나 판사가 피해자를 어떻게 대우하는가에 따라서 피해자의 회복기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미래에 법조인이 되었을 때 성범죄피해자를 어떻게 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기정 _ 수많은 성폭력 판례를 읽으며 성폭력범죄의 잔혹성을 실감할 수 있었고, 활동가분들로부터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며 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실무수습경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폭력범죄를 방지하고 억제하기 위하여 인식 개선 운동에서부터 형법 개정 운동까지 다양한 차원의 노력이 기울여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차 법률가가 되어서 어떠한 자세로 성폭력사건에 임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충연 _ 성폭력이라는 주제도, 한국성폭력상담소라는 시민단체도 저에게는 모두 낯설었던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성폭력 문제 또는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하는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공익법무실습 5일 동안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각종 세미나를 듣고 토론을 하고 판결문 분석 과제를 하면서 위 두 가지 모두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미나를 통해서는 성폭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광범위하고 피해자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판결문 분석을 통해서는 주변에서 성범죄가 어떠한 양상으로 이뤄지는지, 피해자의 진술은 법정에서 어떻게 판단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에서 시민단체가 내는 목소리를 몸소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은지 _ 법과 사람을 잇는 법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진술’이라는 증거를 주된 기반으로 하는 성폭력 관련 판례가 피해자를 보호하는 울타리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면서 법률가로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또한 어떤 마음가짐으로 피해자와 사건을 마주해야할지 생각하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2021년 동계법무실습 참가자 _ 이린, 원충연, 이예림, 임은지, 홍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