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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시끌 상담소/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인터뷰

12월 활동가 인터뷰: 셀프 인터뷰 1

두달만에 돌아온 활동가 인터뷰, 대망의 마지막입니다. 12월 활동가 인터뷰!
이번에는 특별히 인터뷰를 기획한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활동가 인터뷰를 기획했는지 궁금한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내일 9시에 2편으로 만나요!

인터뷰어/인터뷰이: 닻별(), 세린(세), 승은(승)

 

0. 인터뷰이 소개

그리고, 성문화운동팀 닻별이 함께 했습니다.

Q1. 상담소 자원활동에 지원하게 된 계기

: 저도 인턴을 거쳐 상근활동가가 된 거라서, 저부터 할게요. 상담소에는 자원활동가/인턴을 받는 여러 채널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경희대학교 NGO대학원과 씨티은행이 공동으로 주최-주관하는 NGO 인턴십인데, 친구가 알려줘서 지원서를 쓰게 됐어요. 그 때가 2018년 말이었는데, 2018년은 개인적으로 번아웃의 해였어요. “어차피 이제 곧 졸업이니까 학생운동을 그만두고 사기업에 취직할까?” “어렸을 때부터 NGO 활동가가 되고 싶었으니 꿈을 선택할까?”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시기이기도 했죠. 친구는 제 고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인턴십에 대해 알려줬지만 저는 인턴 하는 단체에서 딱 두 달 일해보고 결정하자는 생각을 하면서 지원서를 썼어요.

 

인턴 하면서 5년 정도 해 왔던 활동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학내 활동을 해왔는데, 정리해 보니까 되게 많더라고요.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학교를 떠나서 외롭고 지쳐있었는데, 지원서를 쓰면서 활동을 목록화하니 내가 보낸 5년이 완전 헛된 건 아니었네? 하고 정리가 조금 됐어요.

 

학생 활동이란 건 안정성이 낮잖아요. 1년이 지나면 학생회는 바뀌고 신뢰하고 좋아했던 선후배나 친구들도 자꾸 이 공간을 떠나니까 기반이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시민단체는 활동가가 퇴사를 하지 않는 이상 떠나지 않고, 그 안에서 형성된 유대감이 끈끈하게 이어져 있어요. 상담소에 소속감을 느끼게 되니, 제 안에 직업으로서 활동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인턴 끝나고 얼마 안 되어서 상근활동가 채용 공고가 떴어요. 바로 지원해서 상근 활동가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네요.

: 맞아요. 물 흘러가듯 상담소에 온 것 같기도 해요.

 

'낙태죄' 폐지 1인시위에 참여한 닻별(왼), '낙태죄' 폐지 1인시위에 참여한 승은, 세린(오)

 

: 상담소에 오기 전, 학내에서 단과대 학생회장 연석회의가 있었어요. 학생회가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문에 “우리 사회의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문구를 넣었는데 타 단과대에서 그게 비약이라는 주장이 나왔어요. 그래서 성명문을 고칠지 말지에 대해서 회의를 하러 모인 거예요. 저는 고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페미니스트 친구들과 회의를 참관하러 갔죠.

 

저녁 7시쯤 시작해서 다음 날 새벽 5시까지, 계속 그 안건에 대해서만 토의를 했던 것 같아요. 페미니즘이 학내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구나. 안티 페미들이 많고 페미라면 당연하게 여기는 말에 태클을 거는 사람도 많구나 싶었어요. 사회에 나가면 더 심할 텐데 활동가들은 한국 사회에 맞서서 도대체 어떻게 싸우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되게 많이 들었고, 그런 회의가 있어서 활동가들의 삶을 엿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서 상담소에 와서 N번방 시위 나갔을 때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그래도 동의해 주는 사람이 있고, 계속 집회에 나와 주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이런 운동이 가능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년 7월, 손정우 규탄 집회에 참여한 상담소 활동가들. (가장 왼쪽 앞 닻별, 뒤 세린, 가장 오른쪽 승은)

: 활동가들이 더 고립감을 적게 느끼는 것 같아요.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다른 여성단체 활동가, 긴밀하게 관계맺는 페미니즘 친화적 변호사, 판사, 정치인이거든요. 연대하고 협력할 사람들이 더 눈에 잘 보이는 것 같아요.

: 단순하게 내 의견에 공감해 주기 때문에 좋은 게 아니라, 발전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큰 자산이란 생각이 들어요.

 

: 저는 대학에 와서 제가 상당히 이념적인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 전에는 학생들이 학업 외의 것들에 관심 갖는 걸 차단하는 환경 속에서 살았고 저 역시 당시에는 대학 가는 게 중요했어서 그 환경을 얼마간 도구적으로 활용한 아이였거든요. 그럼에도 항상 “난 페미니스트인가?” 이런 의구심이 들었어요. 늘 거리를 두면서 보는 마음이 있었던 거 같아요. 말로는 페미니즘 이슈에 관심 많다고 하면서도 나는 어디에 얼만큼 관심이 있는 거지, 난 왜 이렇게 건조하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들었어요. 공부를 하면 누군가 무엇에 대해 해석이나 분석해 둔 것을 보니까 제가 할 줄 아는 말이랄 것도 알맹이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현장이라고 불리는 곳에 가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현장 중에 왜 상담소였는가? 하면 상담소가 가진 관점과 지향에 많이 공감하기 때문이었어요. 이를테면 N번방 사건이 있고 난 후에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연령이 상향됐잖아요. 그것에 대해 페미니스트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데, 저 역시 청소년들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쉽게 동의를 하게 되는 거예요. ‘연령을 올려서 처벌받게 되면 좋은 거 아닌가?’ 하고요. 근데 어떤 계기로 동의와 성적 역량이라는 데에는 훨씬 복잡한 맥락이 얽혀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사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는데 상담소에서 집담회를 열었어요. 그 집담회에 참석하고 나서 이 공간은 훨씬 여성 내부의 차이에 민감하려고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상담소에 오게 됐습니다.

 

: 이 토론회를 앎이 기획했는데 얘기해 주면 되게 기뻐할 거 같아요. 온라인 반응은 눈에 잘 안 보이잖아요. (토론회를) 하긴 했는데 잘 한 걸까 고민했거든요.

: 미성년자 의제강간죄 연령 상향에 대해 목소리 낸 데가 장애여성 공감이랑 위티 이렇게 두 단체가 있었어요. 그곳의 언어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것 외에는 온라인 판에서 볼 수 있는 반응이 굉장히 긍정적이고, 상향 됐으니까 이제 다 처벌할 수 있다는 말밖에 없는 거예요. 좀 답답하던 차에 딱 집담회가 열려서 좋았어요. 앎한테 꼭 말해주세요.(웃음)

 

Q2. 주로 관심있는 담론/주제/이야기

: 저는 권력관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많은 관심이 있어요. 모든 종류의 폭력이 권력관계와 가까이 붙어 있잖아요. 지금은 저도 (나이 측면에서) 완전히 약자의 위치에 있지는 않게 됐지만 청소년기부터 시작해서 제가 약자로 살아온 시절이 있었고, 그동안 납득되지 않는 폭력을 많이 목격했어요. 부조리함에서 오는 폭력들. 거창하게 말하면 공교육 체계이기도 했고, 가정 내 위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이기도 했고. 또 한국 사회 자체도 엄청나게 폭력적인 문화에 익숙하고, 폭력을 ‘폭력’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되게 유난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기도 하고요. 그래서 폭력과 권력이라는 주제에 되게 민감합니다. 약자성에 대한 재해석과 전유를 하는 페미니즘과 저의 삶이 만났을 때, 처음으로 제 머릿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언어로 정리해서 말할 수 있게 됐고 해방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권력관계와 폭력의 작동 방식이 가장 관심있는 주제입니다.

 

: 저도 약자를 향한 폭력을 다룬 컨텐츠나 상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컨텐츠에 관심이 많아요.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제 개인사와 관련이 있는데, 저는 제가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에 의한 정서적 폭력이 메인인. 부모님은 빨리 실망시켜야 좋다지만 그걸 못 해서 부모님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저는 저대로 성취에 대해 만족할 수 없게 되면서 우울해졌던 경험이 있거든요. 아무튼 제가 그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폭력이라고 얘기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에 가족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든 생각은 내가 폭력이라고 느끼는 경험들을 상대방은 똑같이 기억하지 않을 수도 있구나. 근데 그러면 내 기억이 잘못된 건가? 그런 고민. 이럴 때 내 경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에 대해서 아직 답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유난히 내성적이었던 어린 세린.

 

상담 선생님은 상대의 행위를 폭력이라고 지적함으로써 세린 씨가 가족관계의 역동을 바꾸는 거라고 얘기하셨는데, 처음엔 허울만 좋은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 가족 안에 들어와본 적이 없으니까, 어쨌든 간에 밖에서 보면 나만 불편하고 예민한 사람으로 보일 거 아니에요. 그래도 얘기한 걸 후회하지는 않아요. 나는 예민하고,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하지만 예민하기 때문에 우리 가족 사이에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되게 심각한 걸 떠올리잖아요. 피해자가 피가 날 때까지 맞고, 물리적인 상해를 입고. 저도 그런 편견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혔던 거 같아요. “나는 그 정도는 아닌데 왜 가정폭력 피해자라고 말하지?” “나는 왜 이렇게 힘들지?” 그치만 얼마나 작은 폭력이든 폭력은 폭력이죠. 가해자와 피해자를 확 갈라놓고 한 쪽은 악마화하고 한 쪽은 가련하고 비련하게 표현하는 게 왜 안 좋은지를 체득한 것 같아요. 그런 서사에 꼭 들어맞는 경험만 폭력인 건 아니잖아요. 이런 이유로, 매체에서 폭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

 

: 저는 자주 이동해 다니는 사람인 거 같아요. 이것도 해봤다가, 저것도 해봤다가. 그 중에서도 일관되게 가진 지향이 있다면, 주목받지 않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이야기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거예요. 활동가 입장에서도 전략의 차원으로 투박하고 강경한 말들을 해야 할 때가 많을 텐데, 그런 말이 필요하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런 말 속에서 필연적으로 누락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언론은 이미 하고 싶은 말이 있고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으러 다니는 거 같은 거예요. 그런 식이라면 앞으로도 과거에 만들어진 담론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미시적인 개개인들, 그리고 그들의 행위성과 차이에 집중하고 싶어요.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실천을 다루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 방금 승은님 말, 완전 사회학과 같아요.

: 사회학과는 이렇게 말하는군요! (웃음)

 


 

 

이번 인터뷰는 오늘부터 총 3편 연재됩니다.

자원활동가 세린, 승은님과 상담소의 만남과 상담소의 '사람'들이 궁금한 분들이라면 끝까지 놓치지 마세요.

그럼, 내일 저녁 9시에 만나요!

 

기획/편집 :  닻별, 세린, 승은

녹취록 작성 : 세린, 승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