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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폭력상담소는?

[후기] 성폭력전담판사의 따뜻한 위로의 말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공판모니터링단의 피해자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의 메세지

 

판사의 따뜻한 위로의 말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지난 11월 19일, 오후 2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에 의한 성폭력사건의 재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올 4월 15일에 발생한 이 사건은 비서실 동료들과의 회식자리에서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벌주를 마시게 해 만취한 피해자를 준강간 한 건이다. 이날 재판은 1심 제2차 공판으로 피해자 증인신문이 비공개로 진행되었다.

 

이 사건 피해자는 동시에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우리들의 강한 연대를 전달하고자 비공개재판이지만 공판 모니터링단을 결성했다. 이날 1시부터 법정앞에 공동행동 활동가들, 시민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인터넷으로 방청신청을 한 4명과 일부 기자단만 법정 출입이 허가되었고, 이들도 피해자 진술 시에는 모두 퇴정했다. 공동행동의 공판모니터링단은 공판이 끝날 때까지 한 시간여동안 복도에 앉아 기다리며 피해자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포스트잇에 담았다.

 

공판모니터링단이 법정 밖 복도에서 피해자에게 포스트잇에 편지를 쓰는 모습

한편, 강윤영·김재련·이지은 세명의 공동변호인단과, 공동행동의 고미경·이미경 두 활동가가 신뢰관계인의 동석제도를 이용해 피해자를 증인지원실에서부터 법정 진술까지 동행하며 지원했다. 법원의 증인지원관이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고 안전하게 우리를 안내해주었다.

 

증인지원관제도는 2011년 한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판사로부터 “노래방 도우미를 한 적이 있군요?” 등의 2차 피해를 겪은 후, 억울함과 모멸감에 유서를 써놓고 죽음을 선택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마련된 제도이다. 당시 대법원은 증인보호를 위한 연구용역을 발주했는데, 본 상담소와 이대아시아여성학센터, 장애여성공감이 컨소시엄으로 이 연구를 맡아 진행했다. 연구진들은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영국, 스웨덴, 미국 등의 증인지원제도를 직접 돌아보고 법규정 및 시스템을 벤치마킹하여 피해자 증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연구하고 구체적으로 증인지원실 설계 등을 제안했다. 이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법원의 증인지원제도는 2012년 이후 지속적으로 보완해오고 있는데, 사전에 구체적인 안내를 포함해 재판 당일에는 증인지원관이 피해자를 만나 방청객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아닌 곳으로 안전하게 증인지원실까지 동행한 후, 증인이 심리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증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가 증인소환장을 받는 순간부터 증언하기까지의 전과정을 담은 “모모씨 증언하러 법정가다”는 비디오를 제작했는데 이 자료는 지금도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재되어있어 피해자들이 법정에 오기 전에 누구들 미리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5층에 마련된 증인지원관실(자료: 법원 홈페이지)

* 참고 자료
- 증인지원관제도 안내 : https://seoul.scourt.go.kr/seoul/join/join_04/index.html)
- “모모씨 증언하러 법정가다” 비디오https://www.scourt.go.kr/portal/media/MediaActivityListAction.work?gubun=708&seqnum=15

 

실제로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증인지원관이 약속된 장소로 피해자를 마중나와, 서관 5층의 증인지원실로 안내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피해자와 변호인, 신뢰관계인 동석자들은 한 자리에서 모여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드디어 재판이 시작되고, 재판장이 비공개 재판을 선언한 후 기자들을 포함한 법정의 모든 방청객이 퇴정한 후, 피해자와 함께 법정으로 이동했다.

 

재판부에 따라 신뢰관계인을 옆에 앉히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의 재판장은 피해자를 법정 중앙에 있는 증인석에 혼자 앉게 하고 우리는 따로 뒷줄에 착석하도록 했다. 증인의 좌측에는 검사와 피해자측 변호인이, 우측에는 피고인측 변호인단이 자리했고, 피고인은 차폐막 뒤 방청색에 혼자 앉아있었다.

 

이날 재판에서의 쟁점은 1차 공판에서와 마찬가지로 두가지였다. 첫째, 피고인은 성추행은 했으나 강간은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피해자는 당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기억나는 사실에 기반해 침착하게 설명하였다. 둘째, 피해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성장애(PTSD) 증상과 본 사건의 연관관계를 증명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해당 사건 이후 서울시청에 퍼져나간 소문들로 인한 2차 피해를 겪어내야 했던 상황을 상세히 진술하였다. 중간중간 오열을 하기도 하며 피해자는 흐트러짐 없이 확실하게 증인진술을 했다. 피고인측 변호인에 의한 반대신문은 크게 논쟁할 만한 것이 못되었다. 특히 재판장은 피고인측의 변호인이 피해 당시의 정황을 상세히 묻는 등 인권침해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차단하는 등 소송지휘권을 발동했다.

 

마지막으로 재판장은 피해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기회를 주었다. 피해자는 “저는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사실에 기반해 진술했습니다. 오늘 이 진술을 근거로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반성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저도 그를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재판을 마무리하면서 재판장은 “3년동안 성폭력전담판사로 그동안 수 많은 피해자들이 이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먼저 피해자가 법정에서 이렇게나마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마음이 풀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진술을 하신 피해자를 포함해 모든 피해자들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술에 취했다고 해도 당신은 잘못이 없습니다. 숙박업소에 갔다고 해도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은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분노를 공감하는 재판장의 따스한 위로의 말은 법정을 울렸다.

 

재판을 마치고 공동변호인단과 공판 모니터링단이 모여 공판과정을 나누는 시간

피해자가 증인지원관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귀가하고, 공동변호인단 및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한 활동가는 공판 모니터링 활동가들과 기자들이 모여있는 법정 지 못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뿐만아니라, 치유에 큰 힘이 되리라 믿는다.

 

이 사건 3차 공판(결심)은 오는 12월 10일 오후 4시에 같은 법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번 재판이 가해자는 처벌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식적인 판결로, 우리사회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당신은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는 재판장의 따한 위로의 말이 있었다는 공판 공유에 환영하는 모니터링단

 

 

* 이 후기는 본 상담소 활동가 이미경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