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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지금,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향한 적극적 공감을 이야기할 때. - 영화 <도가니> 읽기 (1)


영화 [도가니]이슈가 전국을 휩쓰는 지금,
'성폭력 없는 사회'라는 상담소 활동가들의 희망을 이 광풍의 끝자락을 붙잡고 불태워봅니다.
그 시리즈 첫번째. 상담소활동가들이 본 '영화 도가니' 이야기입니다.
왜 다수의 관객들이 이 영화를 지지하는걸까요?
그리고 이 지지의 열기가 지속되려면 우리는 어떤 노력들을 해야할까요?



지금,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향한 적극적 공감을 이야기할 때.
- [도가니] '영화'를 말하자 : 영화 [도가니]를 지지하는 당신에게
   

지난 9월 22일 개봉 이후 영화 ‘도가니’ 열풍이 전국을 휩쓸고 있습니다.

개봉 초기의 열광적인 반응은 한 풀 꺾였지만, 영화 밖 현실에서는 실제 사건이 벌어졌던 광주 인화학교 운영 법인에 대한 행정처분, 경찰의 추가수사, 총리실의 ‘도가니 종합대책’ 발표 등 실생활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움직임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영화 ‘도가니’는 하나의 문화 상품이 아닌,

우리 시대의 숨어있던 폭력의 한 고리를 끊어낼 열쇠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영화제작사측은 18세미만 관람 불가 등급이었던 영화를 재편집하여 15세 이상 청소년 관람가로 상영할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버전 상영도 추진중이라고 하니, 영화 ‘도가니’의 흥행은 당분간 계속되겠지요. 이렇게 관람층이 넓어지면서, 영화를 해석하는 시각도 다양하게 나타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이 영화 '도가니' 관객들을 이렇게 분노와 슬픔으로 가득차게 만드는 것일까요.

물론 이 영화 한 편이 성폭력을 둘러싼 잘못된 통념들을 모두 바꿀 순 없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는 성폭력에 대한 다른 생각을 시도하는 기회임은 분명해보입니다. 이번 기획 블로깅을 통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영화 ‘도가니’의 ‘성폭력 사건’ 재현의 한계와 관객들이 더욱 고민해볼만한 지점은 무엇일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사건을 말하는 '나'는 누구일까요
                                                  
(사진출처: 씨네21)


‘나의 생존을 위해 타인은 돌보지않는 현실’ 속에서
불의에 눈 감고 살아온 사람
들,
그들이 외면한 폭력의 현장에 소환시키는 영

영화 ‘도가니’의 주인공은 살던 곳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무진이라는 먼 도시로 떠나온 미술교사입니다. 그는 처음 교장을 만나러 간 자리에서 발전기금 명목의 돈을 내어야 임용이 된다는 얘기를 듣지만, 어쩔 수 없는 관행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입니다. 학교 재단에서 교사 임용을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픈 아이를 둔 경제력 없는 홀아비’인 주인공에게는 나에게 이득이 된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뻔한 불의’였을지 모릅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삶이며 IMF 이후 더욱 사회적인 조명을 받았던 ‘무기력한 가장’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저질러도) 비난 보다, ‘아빠 힘내세요’라는 말과 함께 이해받고 지지받은 경험이 더 많은 집단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현실은 나와 멀지 않으며,

나의 일상적인 판단과 행동이 폭력에 공모하는 결과를 만들수도 있음을 말해줍니다.

아이들의 증언을 듣고 교장의 성폭력 가해사실을 알게된 후 어찌할 바 모르던 주인공은, 어머니가 ‘교장에게 잘 보이라’며 전해준 난을 들고 다시 교장실로 갑니다. 하지만 교장실에서 성폭력 가해자 선생님에게 처참하게 맞고 있는 민수를 보자, 주인공은 다시 무기력함을 느끼고 곧이어 분노하게 되죠. 모든 불의에 눈 감으며 취직한 학교의 실체와 나의 공모를 깨달은 이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순간, 관객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공감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 '도가니'는 2000년대 중반이후 ‘조00 사건’, ‘김00 사건’ 등 전국을 흔든 아동 성폭력 사건을 연상시키며 국민적 죄책감과 부채의식마저 불러 일으키고 있을지 모릅니다.

성폭력 피해 현장에서 들려온 아이의 비명은 인화학교 사건 당사자뿐만 아니라, 성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공포를 떠올리게 합니다. ‘도가니 열풍도 언젠가 식을 것이다’라는 냉소적인 사람들이 내 옆에 있다면, 그 냉소를 만든 ‘여론’에는 나의 태도도 속해있겠지요.

가해집단의 비리, 공모, 끈끈한 연대가 등장하고, 다시 피해 아동의 증언과 공포가 반복되는 영화의 흐름은 가해집단에 대한 분노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감과 분노를 함께 불러일으키죠. 극중에서 민수가 ‘정말 그 사람들 벌 받게 해줄 수 있어요?’ 라고 묻는 말에, 주인공은 ‘그래 내가 약속할게’라는 말로 용기를 심어줍니다. 하지만 결국 가해자들은 실형을 면하고, 민수는 어른들 누구도 해줄 수 없었던 복수를 스스로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사진출처: 씨네21)

'사회비리와 부정부패를 들춰내고 복수하기'는 ‘공공의 적’류의 한국 범죄영화에서 익숙한 서사구조이지만, '도가니'는 권선징악의 결말이 없습니다. 이 점에서 관객들은 안타까운 인화학교 실화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 떠올립니다. 앞서 언급한 2000년대 아동 청소년 성폭력 사건들에서 시민들이 가장 분노한 지점도 낮은 형량, 재판 결과, 수사재판과정의 인권 침해였기에, 수사재판기관에 대한 불신도 확고해집니다.

결국, 영화는 ‘아동 성폭력 가해자는 나쁘다’라는 인식 외에 피해 당사자들을 위해 어떤 노력도 관심도 기울인적 없던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아이들과 저의 온기가 아저씨에게 전해지길 기도할께요’, ‘무진으로 오세요 하얀 안개의 도시’ 라는 영화 속 대사와 문구들은 그런 나에게 더 잔인하게 다가오죠.


장애 아동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과정의 어려움은 드러나지 않는 재현들

극중 아이들은 법정 진술 장면과 진술 동영상 촬영 장면에서 매우 두려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수사관의 질문을 바로 이해하고 자신의 의견도 잘 표현합니다.

하지만 실제 법정에서는
피해자의 연령과 장애를 이유로, 해당 진술을 신뢰성을 의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진 장애의 특성과 언어/행동 습관을
수사관이 이해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피해자가 단답식의 답변만 하는 경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수사관과 재판관들에게 전달되도록 진술보조인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중 민수는 지적장애 1급 판정을 받은 아이이지만 의사표현은 물론 분노, 슬픔, 기쁨 등 감정 표현도 누구의 도움 없이 잘 해내는 모습을 보입니다.
극중 유리 역시 큰 두려움 속에서도 묻는 질문에 잘 대답하며 법정진술을 마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 제작시 극중 성폭력 피해 아동의 법정진술 재현에서 ‘장애’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없었던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장애를 가진 성폭력 피해자의 고충도, 수사재판절차의 세세한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들이 광주인화학교사건이 ‘미제 사건’으로 남은 숨어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다른 장애인(아동)성폭력 사건이 무죄판결을 받는 큰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만약 영화를 조금 더 사실적으로 그렸다면,
(광주 인화학교 사건 당시 마찬가지로)

주인공과 ‘무진인권운동센터’ 활동가 서간사는,

그저 아이들을 토닥여주고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것 만으로,
법정 진술 전날 밤을 보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실제 재판과정의 고충을 알지 못했기에,
극중 ‘서간사’는 상상속의 '인권운동가
그저 분노하고 큰소리치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역시 무기력한 인물처럼 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결코 쉽게 살고 있는게 아닌데 말이죠.

아마도 현실의 ‘서간사’는
아이들이 법적 절차를 이해하고
수사관과 변호인의 질문을 이해하도록

진술시 잘못 해석될 수 있는 답변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밤을 새며 고민했을 것입니다.

영화 ‘도가니’와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강자 VS 약자의 구도가 아니라
법의 언어 VS 법의 언어 주변부에 있는 자들의 권력 차이와 (승자가 정해진)싸움인 것입니다.

 

                                                   (사진출처: 씨네21)

성폭력은 나와 먼 어느 곳에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견고히 하는 영화

성폭력 피해자의 삶을 ‘나의 일, 내 주변의 일’로 인식시키는데 한계를 보여줌

하얀 안개의 도시, 그 도시에서도 외진 곳에 위치한 ‘자애학원’은
어둡고 깊숙하고 분리되고 외진 곳에 있습니다.
자애학원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공간도 마찬가지죠.
드러나기 힘든 곳에서 존재하는 폭력이지만,
그 폭력의 경험자들은 모두 나의 주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성폭력은 나와 멀리 떨어진 어느 공간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단지, 내가 애써 보지 않으려 해왔을수도 있습니다.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은 2005년에 처음 드러난 이후 2008년 까지 법정투쟁을 벌이며 언론을 통해 외부로 알려졌던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건이 벌어진 당시에는 이만큼의 전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습니다. 물론 소셜네트워크산업의 발달, 성폭력에 대한 인식의 변화 등 5년여의 시간 동안 한국 사회가 많이 변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죠,

한 편에선 영화에서 성폭력 피해자 역할을 한 아동 배우들의 인권 침해를 논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구체적인 재현을 통해 이 사건을 영화화하지 않았다면
이 만큼 인화학교 사건에 대한 공분을 살 수 없었던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영상을 통해 실제 성폭력 현장을 재현해야만,
(아동)성폭력피해자의 입장을 공감할 수 있다면,
우리는 계속 이러한 영상산업과 문화상품에 의존해서만 사회를 바꾸어야할지도 모릅니다.

영화 '도가니'를 지지하는 당신이라면,
성폭력피해생존자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는 방법에 귀기울여보시길 바랍니다.



- 다음 블로깅은 '영화 [도가니]와 장애인 성폭력' 으로 이어집니다. -  

 

그리고 tip.

 

블로깅으로 남기고 싶은 여러 다른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어찌 글로 한 없이 적어보겠나 싶어 간단하게 남겨봅니다.

상담소 활동가들은 단체관람으로 이 영화를 보았답니다.
그리고 이런 말들을 했는데요,

“결국 영화속 화자는 아저씨인걸까?,

공유는 왜 정유미에게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지?

범죄자 남성을 비호하는 여성들은 왜 꼭 ’정부‘아니면 ’독한 부인‘ 이야?

왜 보복은 민수만 했던걸까? 가장 나이가 많아서?

’좋겠다 너는 쉽게 살아서‘ 라는 공유의 말은 너무 감상적인데!

정유미라는 배우가 좀 아까운 영화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