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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예인 성착취' 한 여성 연예인의 목숨 건 고발, 그러나… 본문

상담소는 지금/생존자와 함께한 대담한 도전: 20주년 특집

'여성연예인 성착취' 한 여성 연예인의 목숨 건 고발, 그러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상담소 2011. 8. 2. 09:39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주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공동으로 '성폭력에 맞선 20년'이라는 기획기사를 마련하였습니다. 본 기사는 ["권력자에게 성접대 제안 받았어요" 한 여성 연예인의 목숨 건 고발, 그러나 /성폭력에 맞선 20년⑨ - 고 장자연씨 성착취 사건이 남긴 것]라는 제목으로 8월 1일자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2009년 3월 7일. 한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그맘때 방영되던 유명 트렌디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배역을 맡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의 죽음을 눈여겨 보지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연예인들의 자살이 한 해에도 몇 번씩 보도되고 있었고 그 대표적 이유인 우울증은 대중을 향한 이미지와 스스로에 대한 이미지에 괴리감을 갖고 있는 연예인이라면 흔히 겪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하루 아침에 판도가 변했다. 이 여배우의 매니저가 그의 죽음에 다른 이유가 있다는 주장을 하고 나온 것. 이어 고인이 생전에 '저는 힘없고 나약한 신인 여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라는 글을 남긴 사실이 드러났다. 소문으로만 돌던 연예계의 소위 '성상납' 비리가 드러나는 것인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여성 연예인 죽음에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은 누구?

 

 
  
▲ 여성연예인 성상납 사건은 성착취와 성폭력이다 3월 16일 국과수가 고인의 친필편지가 아니라는 수사결과를 발표한 다음날, 여성단체들이 여성연예인 성상납 의혹 재수사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고 장자연은 그렇게 죽은 이후 더 유명한 배우가 되었다. 그가 생전 출연한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가 개봉하자 그의 베드신 연기가 영화 홍보에 활용되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사들이 터져 나왔지만, 속시원히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소속사 대표를 대상으로 한 수사 결과, 재판부는 소속사 대표가 진술한 일부 폭행에 대해서만 인정했을 뿐, '성상납'이라는 이름으로 소속사의 이익을 위해, 성적 관계들을 맺게 한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경찰이 발표한 중간수사 내용은 이 사건이 고  장자연씨를 만났던 고위층 인사들을 수사하기는커녕, 그들의 편의를 봐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는 논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고인의 49재가 다 되어서야 늑장수사 논란을 안은 채 발표된 '장자연 리스트' 중간 수사결과는 경찰의 수사 의지를 의심케 했다. 경찰은 41명의 수사 전담팀까지 구성하였지만, '수사대상자들이 사회 활동에 바쁜 사람들이라 조사 일정 잡기가 힘들고, 피해자가 사망한 데다 중요 피의자인 전 소속사 대표 김씨가 일본에 도피 중이라 특별히 밝혀낸 것이 없고 입건된 사람 중 언론인은 없다'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발표하였다. 

 

당시 발표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경찰은 매니저 유아무개씨와 소속사 대표 김씨를 포함한 장자연리스트 수사대상 20명 중 술자리 접대 동석사실과 범죄 혐의 등이 확인된 9명을 입건하고 나머지 11명에 대해서는 내사중지, 내사종결, 불기소처분 등을 결정했다. 입건된 사람들 중 5인에 대해서도 김씨가 검거될 때까지 수사를 중지하는 참고인 중지 결정을 내렸다.

 

김씨를 수사하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진 불기소처분은, 수사대상이 사회 유력인사이기 때문에 경찰과 검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게 했다. 기자회견 내내 장자연리스트에 포함되었을 것이라 추정되던 한 언론인의 조사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이 줄을 이었지만, 경찰은 속시원히 대답하지 않았다. 이러한 경찰의 수사태도는 이 사건이 연예계를 둘러싼 권력형 비리라는 점에서 외압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의심할 만한 내용이었다.

 

이렇게 외압수사와 권력형 비리 논란이 계속되는 동안, 고인의 죽음이 남긴 '여성 연예인의 성상납' 논란에서 여성 연예인 당사자는 제외돼 있었다. 시민들의 관심은 '누가 고 장자연과 만났는가'에만 집중되어 있었고, 왜 여성 연예인들이 이런 남성 인사들을 만나 성적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야 하는지, 연예산업에 어떤 매커니즘이 존재하는가 하는 데는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고인이 '고통'이라고 말하며 죽음을 택해야 했던 이유가 '성상납'이었다면, 이것을 '평등한 대가가 오고가는 은밀한 거래'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2009년 화제가 된 가수 A씨의 스폰서 제안 발언과 2010년에 불거진 모델 B씨의 성상납 발언 등 이후로도 여성 연예인들을 둘러싼 남성 재력가들의 '은밀한 제안'이 심심치 않게 터져 나오면서 사람들은 이를 공공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 연기자의 60.2% "성접대 제의받은 경험 있다" 

 

사건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는 기획사, 제작사, 스폰서에 의한 성접대 제의나 성희롱, 사생활 및 인권침해에 대해 최초로 공식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이 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9년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루어졌다.

 

인터뷰에 참여할 여성 연예인들을 만나는 것은 예상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한다. 연구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다수의 여성 연예인들이 성접대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으며, 접대를 받는 남성들은 '능력의 차별화된 과시'라는 면에서 여성연예인을 동반한 술자리 등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설문에 응한 여성 연기자 중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31.5%는 가슴과 엉덩이·다리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직접 성관계를 요구받은 연기자도 21.5%로 조사됐다. 성폭행과 같은 명백한 범죄로 피해를 본 연기자도 6.5%에 달했다.

 

성접대를 제의한 상대는 재력가, 감독, 제작사 대표, 광고주, 정·관계 인사 등으로 다양했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의 절반 가량(48.4%)은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여성연예인에 대한 성적 침해 이외에도 다이어트 및 성형을 강요하거나 사생활 및 노동권을 침해하는 등 다양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63.6%의 연기자가 폭언 및 인격모독과 같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다이어트(54.6%)와 성형수술(55.6%)을 권유받은 경험이 있었다. 각종 인권침해로 인해 연기자들 중 56.3%는 연예 생활에 회의를 가진 적이 있거나, 31.3%는 연예계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연기자는 21.9%, 우울증 약을 복용한 연기자는 9.4%,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해본 연기자도 10.4%에 달했다.

 

여성연예인은 연예기획사의 자금줄?

 

  
▲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 2009년 11월 4일, 침묵아사 주최로 중요무형문화재 72호 진도씻김굿 보존회가 진행하는 고 장자연씨의 추모굿기 인사동 쌈지길 마당에서 열렸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많은 시민들에게 익숙한 연예기획사들은 거대한 자금력과 탄탄한 운영능력을 보유한 소수의 업체들일 뿐이다. 한국에는 수많은 중소 연예기획사들이 존재하며 대부분 열악한 재정상황을 겪고 있다. 이 업체들이 운영비를 투자받기 위해 주로 동원하는 것은 여성연예인들이다.

 

이 과정에서 기획사 대표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협박 같은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도 하고, '조금만 참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같은 회사에 몸담고 있는 유대감과 동료의식으로 회유하기도 하며 스폰서와의 만남을 주선한다. 

 

이 사건의 진상을 알려내고자 했던 단체들의 연대체도 꾸려졌다.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사람들(이하 침묵아사)'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단체와 인권단체 그리고 교수, 문화계 인사들이 함께 모여 그의 죽음에 얽힌 의혹들을 풀어내자는 취지였다.

 

기자회견과 수사 과정 대응으로 시작한 진상규명 운동은 문화행사로도 이어졌다. 2009년 11월,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추모굿이 침묵아사 주최로 인사동 쌈지길 마당에서 100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이 행사를 위해 박재동 화백은 '침묵을 깨는 아름다운 이미지'라는 제목으로 판화전을 개최하여 수익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 2010년 6월, 침묵아사 활동에 이어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운영주체가 된 여성연예인 인권지원센터가 꾸려졌다. 여성연예인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획사, 제작사에 의한 성접대 강요 및 성폭력 사례에 대해 상담 창구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었다. 연예인 개인의 성적인 측면을 부각하는 연예산업의 특성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아닌, 여성연예인의 인권을 먼저 조명하는 시도였다.

 

이처럼 고 장자연의 죽음은 그동안 '엑스파일'과 같이 입증되지 않은 소문의 형태로만 나돌던 연예계의 '성상납' 비리를 여성 연예인의 인권의 문제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장자연 사건'의 의혹

 

  
고 장자연씨가 교도소에 있는 전씨에게 보냈다고 주장된 편지의 겉봉.
ⓒ 오마이뉴스
 장자연

그렇게 잊혀지는가 싶었던 그의 죽음이 다시 수면 위로 불거져 나온 것은 올해 3월. 2009년 당시 재판기록에 첨부되었던 고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50통의 편지가 SBS 뉴스를 통해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필적감정 결과 고 장자연씨의 친필로 판단되는 편지가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났고, 성상납 혐의 당사자들에 대한 단서로 보이는 내용들이 발견되자, 부실수사 의혹이 불거졌다.

 

국과수의 감정결과 '위조'라고 판명이 나면서 결국 해프닝처럼 끝나버렸지만 고인의 죽음에 대한 의혹도 함께 씻어버리진 못했다. '언론사간의 알력관계의 산물이다, 정치적 논란을 담은 이슈를 덮기 위해 터져나온 사건이다' 등의 소문도 돌았다. 그러나 이런 소문이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고 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2009년 사건 수사 결과 소속사 대표 김씨와 이 사건을 최초로 언론에 유포한 매니저를 제외하면 검찰에 기소된 '장자연리스트' 관련자는 없었다. 접대를 명목으로 고인을 소개받고 성접대를 요구한 것으로 의심된 언론, 금융업, 방송 관계자 등 사회 유력인사들은 모두 무혐의 불기소 처분 되었다.
 
매니저 유씨는 김씨를 명예훼손한 혐의로 사회봉사명령을 선고받았다. 소속사 대표 김씨는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무겁지 않은 형량을 받았지만 항소하였고, 현재 검사도 이에 맞서 항소하여 재판이 진행중이다. 당시 00일보 사주의 실명을 언급한 정치인, 정당 관계자, 시민단체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재점화된 이후 다시 모인 2009년 당시 연대체들은 연예계의 성상납 관행을 '성착취와 성폭력'으로 재명명할 것을 촉구했다. 장씨의 죽음을 둘러싼 연예계 성접대 논란의 초점이 '관행'의 문제가 아닌 폭력과 불법의 문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연예인을 꿈꾸는 사람들, 특히 10대 여성들이 성접대를 하나의 필연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뿌리뽑아야 할 이상 현상임에 다름없는 것이다.

 

성폭력, 연예인이라 말할 수 없어요

 

  
▲ 장자연 사건 시민법정 '분노의 목소리' 2011년 6월 8일, 홍대 걷고싶은거리에서 열린 장자연 사건의 시민법정. 이 행사는 여성단체 주최로 시민의 목소리로 여성연예인 성착취 비리를 심판한다는 취지로 개최되었다.
ⓒ 한국성폭력상담소

이 사건을 제대로 알려내기 위해 노력했던 연대체들이 지난 2년간의 과거를 돌아봤을 때 모두 공감했던 것은,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규명 뿐만 아니라 연예인 인권을 이슈로 활동을 지속해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연예인 당사자들이 본인의 혹은 동료들의 열악한 인권을 위해 나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이것은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 전반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희망을 위해 일하고 있는 신인 연예인들이 빠질 수 있는 이 무서운 함정에 대해 모두가 올바른 시각과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6월, 여성연예인 인권지원센터 1주년을 맞아 토론회가 열리고 '여성연예인 인권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었다. 토론회에는 한 여배우도 참석하여 "배우를 지망하는 여성이기 때문에 걸려들 수 있는 함정, 그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위를 하기위해 노리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고, 누구도 걸려들 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연예인의 꿈을 꾸는 여성들에게 그들의 '성'은 위험이자 기회로 인식되고 있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010년부터 현재까지 두 건의 여성연예인 사건을 지원하였다. 한 건은 십대 연예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성폭력과 사기행위를 일삼아 현재 재판 중인(1심에서 실형 5년 판결) 사건이고, 다른 한 건은 기획사 대표에게 회사의 거물 투자자인 스폰서를 소개받고, 그에게서 성형 및 다이어트 강요를 동반한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다.

 

사건을 지원하면서 상담소가 더욱 고민하게 된 것은, 사건 이후 이들의 삶과 희망의 문제였다. 배우, 가수, 연예인의 꿈이 좌절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연예계 내부에서 겪은 폭력을 외부로 드러내는 결심을 한 이들의 결정은 대단했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지 모를 이들의 고통은 누구와도 나누기 힘든 혼자만의 몫이라는 사실은 씁쓸한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사건 이후, 사람들은 한국사회 권력층의 남성들을 향해, '당신도 고 장자연, 혹은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을 여성 연예인의 몸을 돈과 거래한 당사자 아닌가'라고 말했지만, 어느 누구도 제대로 수사받고 처벌 받은 사람은 없었다. 아무도 법적인 대가를 치르지 않았지만, 누구나 의심하는 사실. 그것이 고 장자연의 죽음과 여성연예인 인권의 문제가 아직도 뜨거운 감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지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이며 본 사건의 연대체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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