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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를 말하다

한나라당, 여자는 아는 게 쥐뿔도 없다고?

 

지난 18일 한나라당 경기도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일명 ‘아오모리 노래방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 송명호 현 평택시장을 2010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한나라당 평택시장 후보로 공천했다. 4월 8일 서울고등법원이 송명호 시장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는 판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이 판결을 가뿐하게 무시하고 그 열흘 뒤엔 성추행범을 공직후보로서 공천한 것이다. 최연희 의원부터 정몽준 의원까지 끊임없이 성폭력 소식을 달고 다니는 한나라당이니 이 공천 소식을 듣고도 사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다 싶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제작한 2010 지방선거 홍보동영상을 보고는 한동안 충격과 의문에 휩싸였다. 처음에는 한나라당의 공식 홍보동영상이 아니라 한나라당을 비꼬기 위해 네티즌이 만든 패러디영상인 줄 알았다. 정말 이걸 여성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하기 위해서 만든 동영상일까? 이거야말로 한나라당 내부의 지능적 안티가 만든 동영상이 아닐까? 여성유권자를 겨냥해서 이렇게 저열한 홍보동영상을 대놓고 만들 정도의 수준이라면, 한나라당에서 그렇게 많은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한나라당 성폭력 사건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한나라당, 친히 막장개그의 진수를 보여주다.

  이제는 그 인기가 한풀 꺾였지만 여전히 재밌는TV의 ‘남녀탐구생활’의 인기는 식지 않고 있다. 남녀탐구생활이 주는 웃음의 묘미는 뭐니뭐니 해도 그 디테일한 묘사에 있다. 평소 모습과는 달리 억지 애교와 내숭을 떨어대는 여자와 시종일관 폼을 잡고 허풍을 늘어놓지만 결국은 그 찌찔함이 들통나는 남자의 모습이 어느 순간 우리의 일상과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녀탐구생활이 주는 웃음이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남자는 20대, 30대, 50대 할 것 없이 무조건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달리 말하면 그래서 항상 여자는 예뻐야 한다)거나 여자는 자신이 잘못해놓고도 걸핏하면 눈물을 흘려서 남자에게 뒤집어씌운다 같은 메시지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현실에서의 남자와 여자는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음에도, 이는 사회통념에 근거하여 ‘남자/여자’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재생산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녀탐구생활을 보면서 실컷 웃고 나서도 그 뒷 끝은 씁쓸할 때가 종종 있었다.

  이번 한나라당의 선거홍보동영상은 남녀탐구생활의 씁쓸한 웃음 막장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남녀탐구생활은 그나마 재미라도 있다면, 이건 뭐 재미도 없고 풍자도 없었다.

한나라당이 만든 선거탐구생활은 총 8편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홈페이지에는 여당편, 정당편 등 2편이 공개되어 있으며,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는 여당편, 정당편, 후보자편 등 3편의 동영상을 검색할 수 있다.

 이 중 여당편 내용은 대충 이렇다. 휴일에 여자가 집에서 빈둥거리며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남동생이 등장해서 "뉴스 좀 보고 살아라, 그러니까 아는 게 하나도 없지" 하고 훈계를 늘어놓는다. 이때 내레이션을 하는 성우는 "여자는 뉴스를 바퀴벌레보다 싫어해요. 드라마는 재방, 삼방도 보면서 뉴스는 절대 안 봐요. 여자는 사실은 아는 게 쥐뿔도 없어요"라고 쐐기를 박는다. 이쯤 되면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여자도 뉴스를 보거든' 하고 반박하는 게 오히려 무색하게 느껴진다. 그냥 입이 쩍 벌어질 뿐이다. 대체 한나라당은 뭘 믿고 이런 홍보동영상을 만들었을까. 게다가 남동생이 이 정도는 알아야 된다며 내는 퀴즈란 게 한국정부가 원전을 해외로 수출한 나라를 맞추라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방사능오염 및 사고위험이 높아서 환경단체에서 반대하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해외로까지 수출했다는 것이 여당이 제1업적으로 내세울 만큼 그렇게나 자랑스러운 것일까?

후보자편은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백마 탄 왕자님' 타령까지 등장한다. 화창한 봄날, 여자가 길을 걷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얼굴을 찌푸린다. 주위를 보니 '멘트 이상하고, 외모 이상하고, 의상 이상한'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여자는 후보자 얼굴만 보고 별로라고 생각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린다. 이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 여자. '반짝세일'인가 싶어 아줌마 파워를 발휘해서 헤치고 들어가니, 얼굴 잘 생기고 샤방한 한나라당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여자는 '백마 탄 왕자님'처럼 잘 생긴 한나라당 후보에게 한 눈에 반해서 한나라당 후보를 적극 지지하게 된다. 자기 입으로 '백마 탄 왕자님'이라고 말하는 대담함(?)에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은 둘째치고, 선거에 나서면서 그 많은 공약 중에 내세울 것이 후보 얼굴밖에 없었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온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홍보동영상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이렇다. 여자들은 뉴스도 안 보고 무식하고, 드라마만 보잖아. 그러니 얼굴 잘 생긴 후보를 공천해줄 테니 얼굴만 보고 찍어라. 만약 네티즌이 이런 패러디 동영상을 만들었다면 이건 한나라당의 여성정책에 대한 비판적 풍자라고 그나마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정권을 획득한 여당임을 강조하는 한나라당의 공식 홍보동영상으로 이런 걸 만드는 의도는 무엇일까 심히 궁금하다. 이거야말로 웃자고 한 농담에 죽자고 달려드는 것이 아닐까?

 

한나라당은 여성유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

 ‘여성이 행복한 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오세훈시장이 야심차게 준비한 ‘여행(女幸)프로젝트’는 여러모로 여성들의 빈축을 샀다. 물론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어준다는 데야 그 취지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성들이 하이힐을 신고 걷다가 보도블럭에 굽이 끼면 불편하니, 보도블럭을 평평하게 교체해주겠다는 데서는 그야말로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여성들이 살기 힘든 사연은 수백가지, 수천가지인데 그래 고작 골라낸 것이 하이힐 때문에 걷기가 힘든 거라니, 이건 뭐 너무 황송해서 몸둘 바를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의 이번 선거홍보동영상은 한나라당이 여성유권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여성들은 ‘얼굴, 멘트, 의상’으로만 후보자를 판단하기 때문에, 겉만 번지르르한 후보를 내세워서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 당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한나라당이야말로 자신들이 패러디한 남녀탐구생활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다시 보길 바란다. 남녀탐구생활에 나온 여성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 학벌, 경제력, 집안배경까지 모든 정보들을 순식간에 스캔하고 판단하며 얄미울 정도로 똑 부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타령이나 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여성유권자 정책은 너무 시대착오적이여서 안스러울 지경이다.

 ‘여자들이여, 뉴스를 보라’는 한나라당의 호기로운 메시지에 나 또한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여성정책을 전개한다면, 뉴스에 눈뜬 여자들이 과연 한나라당을 선택할지는 미지수이다.

 

정치, 코메디랑 달라요! 여성 유권자가 그렇게 만만한가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한나라당 지방선거 홍보동영상 보러가기1

한나라당 지방선거 홍보동영상 보러가기 2 

 

- 성문화운동팀 보짱